An Early Geometric Cremation Burial of a Warrior Craftsman About 900 BC
This grave illustrates the normal method of adult burial in the Protogeometric and Early Geometric periods. The body was burned on a pyre together with vases containing offerings of food and drink.
The ashes were gathered into an urn and set into a small pit in and around were stacked other offerings in this case tools and weapons of iron and terracotta vases. Finally, the burial place was protected and marked by a mound of earth.
우선 그리스 시대 구분을 잠깐 정리해야겠다. 기원전 1100년~기원전 750년 무렵을 The Greek Dark Ages, 곧 그리스 암흑시대라 하거니와, 대략 400년 혹은 450년가량 지속한 저 시대를 두 시기로 구분하니, 기원전 1030~기원전 900년 무렵을 Protogeometric period, 원元기하학시대라 하고, 그 후반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900년~700년 무렵은 주로 미술사가 중심이 된 명명법이 아닌가 하는데 Geometric period, 곧 기하학 시대라 한다. 아무래도 이 시기에 기하학 문양이 집중 유행한 까닭이 아닌가 한다.
앞서 소개한 저런 매장방식은 Protogeometric과 Early Geometric period 사이에 유행한 것이라 한다. 대략 기원전 900년대를 중심으로 유행했다 생각하면 되겠다.
저 설명에 의하면, 이 시대에는 시신을 화장하고는 그 재를 모아서 항아리다가 넣고는 저런 방식으로 매장했다고 한다. 당연히 가장 큰 단지에다가 화장하고 수습한 뼈를 넣었을 것이며, 그 항아리와 각종 철기를 껴묻거리로 삼아 매장했다.
무덤은 이른바 움무덤 아닌가 한다. 땅을 저리 팠으니, 지금 우리네 김치독을 묻는 방식과 비슷하다 생각하면 되겠다. 항아리와 껴묻거리가 안치되는 부문은 흙으로 채우고는 그 위에 뚜껑 혹은 천장에 해당하는 부분에다가 돌을 깔았음을 본다.
나아가 이곳이 무덤임을 표식하고자 그 위로는 봉분을 만들었다.
저 무덤에서 출토한 실제 유물들이다. 왼쪽 항아리가 화장한 시신 재를 넣은 항아리요, 오른편 각종 철기가 껴묻거리다. 이 무덤에 묻힌 사람을 고고학도들이 a Warrior Craftsman, 곧 전사를 위한 무기를 제작하는 기술자 무덤으로 본 까닭이 아마 저런 철기들에서 판단한 것이리라.
유물은 항아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철기라, 유의할 점은 이 무덤을 만든 시기가 기원전 10세기, 이때 동아시아에서는 한반도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서도 철기는 등장하지 않은 시점이다.
철기 구성을 보면 창이 있고 도끼도 보이는 듯하며, 재갈도 있다. 아마 묻힌 사람은 말을 타고 다닌 모양이다.
Ash urn은 neck-amphora이며, 그 어깨선을 따라 철테를 둘렀다. 저 철테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게 시신 재를 넣은 암포라. 몸둥아리를 따라 일렬로 무슨 의미인지는 종잡기 힘든 줄 문양을 넣었다. 그래서 지오메트릭이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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