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전 12시를 기점으로 나는 정식으로 연합뉴스 문화부장직을 벗었다. 대과는 없는 듯 해서 적이 맘이 놓인다.
덧붙여 중간에 대략 2년에 걸친 해직이라는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부당해고로 승소 복직했기에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나는 단절한 기자직군은 아니다.
비록 기자직군이라는 타이틀은 달기는 했지만 나는 오늘로 일선 취재현장은 떠났다. 물론 정년까진 좀 남은 까닭에 이 한류추진단장 이후 다시 취재랑 밀접한 진짜 기자직군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있지만 암튼 1993년 1월 1일 입사 이래 27년 5개월 만에 첨으로 취재현장에서 벗어났다.
그러니 나로선 만감이 없을 순 없으나 그 기간을 통괄하기는 시기도 적당치 않으니 문화부장 25개월만 간단히 회고한다.
2018년 4월..내가 문화부장 보직을 받았으나 이는 내가 원한 자리는 아니었다. 내게 선택지가 있느냐 물었을 때 나는 딴데를 달라했지만 그리 되지 않았다.
내가 원한 최적은 아니었지만 보람은 컸고 그만큼 잘하고 싶었다. 다행히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 좋은 선후배를 만났다.
지난 인사에서 물러난다고 철석 같이 믿고는 환송회도 여러번했다가 낭패를 맛보기도 했다. 인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니깐 말이다.
일전에 썼듯이 나는 문화부장으로 참말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그걸로 재직하는 기간 빌보드 일등이 단군조선 이래 첨으로 나오더니 그런 일을 네 번이나 거푸 봤다.
그러다 봉준호가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는 못 볼 꼴도 봤다. 다시 그러다 같은 봉준호가 아카데미상 작품상까지 거뭐쥐는 목불인견도 있었다.
나는 안다. 저런 사건들이 나로써 빚어진 일이 아니란 걸 말이다.
하지만 나는 두고두고 써먹으리라.
라떼는 말야 하며 마치 저 위업들이 나로써 빚어진 것처럼 후세에 두고두고 써먹으리라.
그래서 나는 참 복 받은 문화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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