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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전국 초묘 미라

[마왕퇴와 그 이웃-17]: 회곽 구실을 한 백고니, 청고니

by 신동훈 識 2025.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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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미라는 다들 알다시피 일부러 만든 인공적 미라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시신이 모두 잘 썩기를 바랬지만, 

또 한 가지 벌레와 식물 뿌리, 도굴꾼으로부터 시신이 완전히 썩을 때까지 지켜지기를 원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주자가례의 회곽이다. 

이 회곽을 쓴 묘를 회곽묘라 부른다. 

주자가례를 보고 만들었으므로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고, 

주자가 그 만드는 법을 자세히 이야기했는데, 

유심히 주자가례의 주소를 보면 주자 생전에 이미 강남 땅에는 회곽묘가 만들어지고 있던 것을

주자가 이 무덤이 사대부들의 무덤으로 쓸 만하다 하여 현창한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북송대 무덤 중에는 회곽묘가 발견된 바 있어 

주자가 이 무덤을 처음 창안한 것은 아니며

강남 지역에 꽤 오래전부터 전해 오던 무덤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미라의 형성 기전은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회곽이 큰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다. 

회곽이 온전하지 않은 무덤에서는 미라가 나온 적이 없음에서이다. 

조선시대 회곽을 연구한 많은 분이 아마 회곽이야말로 조선시대 미라가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마왕퇴 미라는 일견해서 조선시대 미라와 다른 것 같지만,

많은 부분에서 이 둘은 서로 닮았다. 

특히 조선시대 무덤의 회곽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마왕퇴의 백고니, 청고니, 즉 햐얗고 푸른 색 고령토라는 말이다. 

장사성 일대에는 마왕퇴만 발견된 것이 아니고, 

전국시대나 한대의 미라가 이것 말고도 더 보고되었었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무덤들은 모두 공통점이 뭔고 하니 

목곽 주변에 고령토를 쌓아 올려 주변과 격리해 버린 것이다. 

마왕퇴 무덤의 구조. 목곽 주변에 있는 whiteclay가 바로 흰색 고령토, 백고니다. 고령토가 목곽 주변에 쌓이면서 내부는 완벽히 보존될 조건이 갖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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