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미라는 다들 알다시피 일부러 만든 인공적 미라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시신이 모두 잘 썩기를 바랬지만,
또 한 가지 벌레와 식물 뿌리, 도굴꾼으로부터 시신이 완전히 썩을 때까지 지켜지기를 원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주자가례의 회곽이다.
이 회곽을 쓴 묘를 회곽묘라 부른다.
주자가례를 보고 만들었으므로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고,
주자가 그 만드는 법을 자세히 이야기했는데,
유심히 주자가례의 주소를 보면 주자 생전에 이미 강남 땅에는 회곽묘가 만들어지고 있던 것을
주자가 이 무덤이 사대부들의 무덤으로 쓸 만하다 하여 현창한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북송대 무덤 중에는 회곽묘가 발견된 바 있어
주자가 이 무덤을 처음 창안한 것은 아니며
강남 지역에 꽤 오래전부터 전해 오던 무덤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미라의 형성 기전은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회곽이 큰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다.
회곽이 온전하지 않은 무덤에서는 미라가 나온 적이 없음에서이다.
조선시대 회곽을 연구한 많은 분이 아마 회곽이야말로 조선시대 미라가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마왕퇴 미라는 일견해서 조선시대 미라와 다른 것 같지만,
많은 부분에서 이 둘은 서로 닮았다.
특히 조선시대 무덤의 회곽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마왕퇴의 백고니, 청고니, 즉 햐얗고 푸른 색 고령토라는 말이다.
장사성 일대에는 마왕퇴만 발견된 것이 아니고,
전국시대나 한대의 미라가 이것 말고도 더 보고되었었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무덤들은 모두 공통점이 뭔고 하니
목곽 주변에 고령토를 쌓아 올려 주변과 격리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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