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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미라

마왕퇴 (2): 마왕퇴 발굴을 보는 시각

by 초야잠필 2023.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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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난岳南 책은 대중서이지만 마왕퇴 개설서 삼아 읽기도 좋다. 

마왕퇴 고분이 발견되었을 때부터 박물관에 전시될 때까지 전 과정을 가감없이 시간순으로 적어놨기 때문이다. 

岳南은 인민해방군 출신 경력이 그의 글에 독특한 시각을 부여했다고 보는데 

비교적 개혁개방이후 중국 정부 시각을 고고학 발굴에 충실히 투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왕퇴 무덤의 경우 발견 당시부터 조사가 끝날 때까지 과정을 岳南은 일관되게

사인방으로 대표되는 문화혁명 도당 일파와

이에 맞서는 합리적 간부들의 싸움으로 묘사하는데 

후자는 발굴 현장에서 땅을 파고 있는 고고학자들과 위로는 주은래, 곽말약이 속하는데

이들은 마왕퇴 발굴과 조사를 부단히 훼손하려는 사인방의 획책에 묘안을 짜내어 필사적으로 막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마왕퇴 발굴과 조사가 진행되던 당시는 중국에서 문화혁명 절정기가 경과하던 무렵이었는데 

대중의 광기는 마왕퇴 유물과 유해에도 때때로 밀어닥쳐 현지를 쑥밭을 만들곤 했다. 

물론 과연 마왕퇴를 발굴 조사하던 사람들이 이 책에 묘사된 것 처럼사인방에 맞서던 합리적인 사람들 밖에 없었던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되겠는데, 

어쨌건 중국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공격받고 불태워지던 와중에 이런 유적이 중국의 역량을 총 집결하여 조사되고 보고서까지 발간된 것은 높게 평가할 부분이라 하겠다. 

앞서 언급한 마왕퇴 미라를 조사한 의학보고서도 내용을 읽어보면 

당시 중국의 모든 의학연구 역량을 총 집결한 것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일단 연구 수준이 매우 높고 당시로서 적용하기 어려운 기법도 많이 이용되어 

그야말로 국력을 쏟아 부은 연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당시 이 연구는 마왕퇴 미라의 보존상태에만 관심을 가질 뿐 

이 연구자체에 쏟아 부은 당시 의학연구자들 이야기는 거의 접할 수 없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1972년 당시의 조사광경. 이 의학적 조사는 당시 신중국의 모든 의학연구 역량을 총동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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