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과 중국의 미라

마왕퇴 (3): 조연으로서의 곽말약

by 초야잠필 2023. 10. 25.
반응형

마왕퇴 미라 스토리에서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한 사람 중 하나는 다름아닌 궈모뤄, 곽말약이다. 

마왕퇴 미라가 발견된 후 제대로 된 의학적 조사가 시행될 때까지 여러 고비가 있었는데

이럴 때마다 급한 불을 끈 사람 중 당시 총리 주은래와 중국과학원 원장 곽말약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곽말약은 마왕퇴 미라 조사 때 매우 전문적인 사항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라에 대한 의학적 조사가 시작되기 전 곽말약이 연구진에게 남긴 메모가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상당히 구체적이며 의학적으로도 합리적이라 볼 만한 사항을 지적한 것을 알 수 있다. 

곽말약이 이처럼 마왕퇴 미라에 대한 의학적조사에 관심을 가진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일본에서 의대를 졸업한 의사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곽말약 연표를 보면, 

1914年: 일본 岡山의 第六高等学校第三部医科입학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1918년: 규슈제국대학 의학부 입학이라 하니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닌 셈이며 우여곡절 끝에 규슈제대 의학부를 입학했지만 

의학이 적성에는 맞지 않았던 모양으로 재학중 몇 번이나 그만 둘 생각을 했다 한다. 

심지어는 1921년에는 잠시 휴학하고 교토제국대학 문과를 청강하기도 했다니 어지간히 의대를 다니기 싫어한 듯 하다. 

의대에 다니는 동안 이미 작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고 여러 편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1923년에는 간신히 의대를 졸업하고 의학사 학위를 받았지만 (여기도 4년제 본과를 1년 더 다닌 셈이다)

더 이상 의업에 종사하지는 않았다. 

다만 중국혁명 후 귀국해서도 곽말약은 자신의 청년시절 몸담은 의대에서 배운 지식은

평생 잊지 않고 계속 필요할 때마다 써 먹은 모양으로

마왕퇴 미라의 인연도 이런 측면에서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 하겠다. 

일설에 의하면 마왕퇴 미라를 해부하여 내장을 모두 적출해야 더 이상 썩지 않는다고 주은래에게 이야기하고

의사들로 하여금 이를 부검을 하도록 요청한 것이 곽말약이었다는데,

미라 보존기술이나 생성원인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 없던 당시로서는 최선의 방책을 생각해 낸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时任中国科学院院长的郭沫若提出,把内脏取出来尸体就不容易腐烂,建议对女尸进行解剖。周恩来总理迅速作出批示同意解剖,还提出“古人都保存几千年了,我们起码要保存200年”
 

곽말약



*** Editor's Note ***


일본에 의대 유학을 했다가 돌아선 인물로 노신도 있다.

최현배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저 시대 의대 진학했다 돌아선 인물들이 독특한 사회변혁 시각을 보이는데

고국을 환자로 비유하고 그 집도의를 자처한다.

의사가 싫어 떠났지만 여전히 그들은 의사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