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박물관을 제안하며 를 연장하며 쓴다.
우리네 박물관 구성이 탑재 내재한 가장 큰 문제로 내가 생각하는 바는 저거다.
우리가 가르치는 이런 것들을 너희가 모르면 죽는다!
이런 협박이 시종일관 모든 박물관을 관통한다.
그래서 어떡하면 그네가 생각하는 이른바 정보를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포장판매를 강요한다.
이걸 사 가지 아니하면 너희는 곧 죽고 만다 강매한다.
중앙박물관을 필두하는 국립박물관, 전국 각 광역과 기초지자체는 물론이요, 대학박물관도 그렇고 사설박물관도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이리해서 시종하고 일관해서 관통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저 협박이다. 저 강요다. 저 윽박이다.
어쩌면 그것은 그네가 살아가기 위한 절박일 수 있다. 왜? 그것이 아니라면 존재가치가 없다 생각하니깐 말이다.
이 절박을 팔아먹으려는 욕망이 솟음하는 곳, 그런 곳이 우리네 박물관이다.
역사? 몰라도 된다. 그거 안다 해서 내 삶이 윤택해지는 것도 아니며, 그거 안다 해서 내 수중에 십원짜리 땡전 하나 더 들어오는 것도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 앎이 도대체 누구의 앎인가? 그 앎이 내 일상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모르는 것보다 낫다고? 그 앎을 추구하느니 딴 짓해서 딴 앎을 추구함이 백배 낫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보여서 뭘 어떡하라고?
이딴 거지 같은 일방하는 주입을 버리는 데서 새로운 박물관은 태어난다.
까 보면 그 강요 압박은 시종 군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박물관인 내가 주입하는 것들은 내면화 체면화해야 한다는 그 군림, 그것은 의식화의 다른 이름이다.
그 앎은 앎의 선득先得한 이가 무지몽매한 이들한테 던져주는 고물이다.
고물을 먹고픈가?
난 더러워서 아니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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