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 생전 행적을 간단히 혹은 자세히 적어 무덤에 세우거나 묻는 문서로 묘갈墓碣과 지석誌石이 있다. 묘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석이라, 봉분 바깥에 주로 돌판으로 만들어 세우거니와, 조선 후기에는 가끔 철판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에 견주어 지석은 광중壙中에 묻는 것으로, 돌판 혹은 도자기 혹은 심지어 벽돌을 쓰기도 한다.
둘을 혼동하는 이가 의외로 많아, 마침 심수경(沈守慶․1516~1599)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 보이는 다음 구절로 증거를 삼고자 한다.
세상에서 선조를 위하여 비명문(碑銘文)과 묘지문(墓誌文)을 지을 때는 반드시 글 잘하고 덕망이 있는 사람에게 청하는데, 혹 청하여도 얻지 못하거나 미루다 써주지 못하는 자도 많다. 비갈(碑碣)은 묘(墓) 밖에 세우고, 지석(誌石)은 묘 앞에 묻는 것인데, 이는 만일 세월이 오래되어 비갈이 없어지면 지석을 상고하여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갈과 지석을 설치하는 뜻이 대개 여기에 있으니, 각기 다른 글을 쓰지 말고 같은 글을 쓰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그런데 예로부터 각기 다른 글을 쓰기 위하여 두 사람에게서 각기 다른 글을 받으니, 이는 무슨 뜻일까. 나의 어리석은 견해가 이러하니, 예(禮)를 아는 자는 부디 헤아려주기 바란다.
世之爲先人請撰碑銘墓誌者。必於文翰之手。或不得請則遷延未就者亦多矣。碑碣立於墓外。誌石埋於墓前。歲久而碑碣泯沒則可考誌石而知其爲某人之墓也。碑誌之設。意蓋在此。然則碑誌不必用各文。用一文似當。而自古用各文。請撰於兩人。是何意也。愚見如是。知禮者幸可商量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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