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가 문명을 일으켜 세웠다면 좋겠지만
이 세상에 그런 민족이 몇이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외부로부터 문명의 씨앗이 들어와 싹트기 마련이고
이건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 예외가 없다.
유럽사를 보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 남부 등 로마사와는 관련을 맺은 지역의 국가들은
로마사를 문명사 도입의 입장에서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은 소위 로만 브리튼을 문명사의 개명으로 보며,
프랑스 역시 골을 추앙하기는 하지만 로만 골을 프랑스 문명의 시작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어떤 유럽 학회가 뮌헨에서 열려 필자도 거기 참석했을 때
학회 연회 자리에서 대회장이 건배를 제안하며
우리는 뮌헨을 로마의 북쪽 끝이라 생각한다고 하며 이야기 했는데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모두 로마를 바라보는 유럽사의 시각을 가리킨다 하겠다.
실제로 처칠은 A history of the English Speaking Peoples(첨부사진)라는 자신의 저작에서
영국사의 시작을 시저의 영국침공에서 시작했다.
이전에도 토착민의 역사가 있었지만 이를 생략하고 시저부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문명사 관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경우도,
역사를 보는 관점은 20세기 이전은 이러한 문명사의 관점으로서
따지고 보면 기자에 대한 숭모도 이러한 관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가 넘어오면서 문명보다는 민족을 더 선택하게 되어
이민족 문명의 이식보다는
우리 민족의 원시시대를 더 선호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렇게 외삽된 문명을 통채로 부정하면서
한국사의 앞머리가 많이 비게 되었다는 점이 문제겠다.
외삽 문명을 부정하면서 날라가버린 이 부분을
그 후 우리가 또 충실히 채웠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아쉬운 점이 많다.
예를 들어 낙랑조선은 한군현의 일부라는 이유로
한국사에서 통채로 들어내는 것이 맞는 시각인가?
낙랑조선이 고조선을 이어받았고
그 문화적 여파가 삼국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 주민의 대부분은 한국사에 합류했다는 점에서
군현시대의 낙랑은 한국사에서 제외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제 나라도 좀 살게 되었고 과거의 식민지-후진국으로 항상 외세를 겁내던 나라도 아니고 한데
이러한 문명사의 관점을에서 본 유연함을 한국사에서도 이제 좀 복원하여 시도해 볼 필요도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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