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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문화] 1500년 전 유골, 16세 가야소녀로 되살다(2009. 12. 15ㅣ위클리경향 854호)

by taeshik.kim 2023.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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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500년전 유골, 16세 가야소녀로 되살다
첨단과학기술 총동원 체형·병력·직업까지 밝혀 실물 형태로 복원 화제

배수로 건설 과정에서 백제 무령왕릉이 기적처럼 출현한 1971년. 그해 12월 중국에는 소련이 침공해 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이에 후난성 창사시(長沙市) 동쪽 교외 마왕두이(馬王堆)라고 하는 야산 중턱에서는 방공호를 건설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세계 고고학계를 뒤흔든 마왕두이 한묘(한나라시대 무덤) 발굴은 이렇게 서막이 올랐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마왕두이는 전한시대 봉건제후국 가운데 하나인 장사국의 ‘넘버2’인 승상 이창(利蒼)의 집안 공동묘지였다. 

이를 계기로 1974년까지 주변 일대를 발굴한 결과 마왕두이에서는 모두 3기의 무덤이 나왔다. 이창 자신과 그의 부인 신추(辛追), 그리고 아들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됐다. 마왕두이 발굴이 경천동지할 만한 사건인 까닭 가운데 하나는 신추의 미라 출현이었다. 2100년 이상이 지나서도 매장 직후 상태를 얼마나 생생하게 유지했는지 시신을 꺼낸 직후 손가락으로 피부를 눌렀다가 떼자마자 그 자리가 곧바로 솟아올랐다는 일화를 남겼다. 

 

송현동 15호분 순장 인골



맞배지붕형 건축물 본뜬 고분 눈길
의학자들은 해부를 통해 신추가 50세 전후에 사망했으며, 참외씨가 위장에서 발견된 점으로 보아 여름철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류머티즘 비슷한 질환으로 고생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신장 154㎝에 발견 당시 체중은 34.3㎏. 이 미라를 토대로 실물 복원한 신추 인물상은 마왕두이 전문 박물관인 창사시 후난성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다만 50대 여인 모습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음인지 30대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 신추가 관람객을 맞는다. 

2007년 12월 22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경남 창녕군 송현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을 공개했다. 이때 속살을 드러낸 무덤 가운데에서도 15호분이라는 번호로 이뤄진 한 무덤은 압권이었다. 우선 이 무덤은 이 송현동 고분군 가운데에서도 규모가 큰 축에 속했다. 흙을 원형으로 쌓아올린 봉토 중심부 지하에다 남북 방향으로 중심축을 둔 단면 사다리꼴이자 평면 장방형인 석실을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 석실은 길이 8.56m에 너비 1.70m, 높이는 2.25m이고 바닥 평면 면적은 14.5㎡였다. 깊은 동굴을 연상케 한다. 

 

복원한 가야 여인



오래 전에 도굴된 것으로 보아 중요 유물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석실 남쪽 벽 근처에서는 무덤의 주인공 시신을 놓았던 길이 2.70m짜리 단(壇)이 드러났고, 그 반대편(북쪽 벽)에서는 순장자 4구의 해골과 토기를 비롯한 관련 부장품이 발견됐다. 무덤의 주인공인 주(主) 피장자가 머리를 남쪽, 다리는 북쪽으로 둔 데 비해 그 반대편 순장자 시신 4구는 모두 석실 너비 방향인 주 피장자와는 전혀 반대 방향인 동쪽으로 머리가 향하도록 배치됐다. 

석실 북쪽 벽면에 바로 붙어 발견된 순장자 인골의 왼쪽 귀에서는 금귀고리 1점이 발견됐다. 이 순장자는 인골 출토 상황으로 보아 석실 천장, 즉 하늘을 바라보며 반듯한 모습으로 누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당시 이 인골에 대한 잠정 추정은 골반뼈를 통해 성별은 여성이며, 성장판이 이미 닫힌 것으로 보아 20, 30대 성인으로 파악했다. 다만 이런 추정은 상세한 분석이 이뤄지면서 많은 대목에서 수정이 이뤄진다. 

당시 현장에 있던 나에게 유독 이채로웠던 대목은 무덤 석실 전체 구조가 완연한 맞배지붕형 건물을 본뜬 모습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무덤 구조는 내가 알기로는 선례가 거의 없다. 전체 석실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외부에 완전 노출된 15호분,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석실은 사다리꼴 몸통을 마련하고 그 위로 대형 판돌 8장으로 천장을 꾸미고 다시 그 위로 단면 정삼각형으로 깬돌을 쌓아 올린 모습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맞배지붕형 건축물을 본뜬 양식이었다. 

 

순장 인골



허리둘레 21.5인치에 8등신 미인
이후 가야문화재연구소는 본격적인 인골 연구에 착수한다. 피부까지 탱탱한 참외씨 여인의 미라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악조건이었지만 해골에서 얻어낸 성과는 신추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컴퓨터 단층촬영(CT)과 3차원 정밀스캔, DNA와 안정동위원소 분석,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 최신 과학 기법을 동원한 결과 순장자 4명의 성별과 식습관을 알아냈다. 이를 통해 순장자들은 수수·기장·조 등 같은 잡곡보다 쌀·보리·콩 등을 주로 섭취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무덤 입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차지한 남성 순장자는 유독 육류 섭취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한 이는 금동 귀고리 한 쪽만을 찬 채 발견된 여성 순장자였다. 분석 결과 이 여성은 숨질 때 나이가 16세 또는 16.5세, 그리고 15호분에 묻힌 주인공에게 봉사하던 시녀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명났다. 성장판이 닫혔다고 잠정 판정됐지만 정밀 조사에서 그 반대임이 드러났고, 무릎 쪽 인골이 많이 닳아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꿇는 일에 종사하는 여인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순장 인골 배치도



나아가 이 여인은 뒤통수뼈에서 다공성 뼈과다증이 보여 빈혈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원인으로는 영양 결핍, 급성감염, 기생충 감염 등이 제시됐다. 치아에서는 충치가 여러 개 보였으며, 사기질형성저하증으로 인한 사기질 결손이 발견돼 입으로 무엇인가를 많이 물어뜯는 일에 종사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분석과 더불어 약 1500년 전 가야계 무덤에 순장된 이 여성을 복원하는 사업도 병행됐다. 그 성과는 최근 공개돼 언론보도를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여러 기관 및 개인과 협조해 완성한 이 여성은 최종 키가 153.5㎝. 신추와 대략 같다는 점이 이채롭다. 턱뼈는 짧고, 얼굴이 넓으며, 목이 긴 미인형이라고 한다. 팔은 짧지만 허리는 21.5인치로 평균 26인치인 현대 여성이 부러워할 만한 8등신에 가까웠다. 

 

복원한 순장 여인



이런 복원 모델이 사실 이 여인의 생전 모습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했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골 분석을 통해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한 수많은 정보를 얻었으며, 더욱이 복원까지 시도했다는 점은 분명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김태식<연합뉴스 문화부 문화재 전문기자>  taeshik@yna.co.kr  
 
전문은 아래에 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_id=200912101153011 

[문화] 1500년전 유골, 16세 가야소녀로 되살다

참외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아?배수로 건설 과정에서 백제 무령왕릉이 기적처럼 출현한 1971년. 그해 12월 중국에는 소련이 침공해 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

weekly.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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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원고는 아래와 같다. 
 
팔등신으로 재림한 해골(위클리경향) 

팔등신으로 재림한 해골

첨단과학이 살려낸 1500년 전 가야 여인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문화재 전문기자. taeshik@yna.co.kr

참외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아?

배수로 건설 과정에서 백제 무령왕릉이 기적처럼 출현한 1971년. 그 해 12월 중국에는 소련이 침공해 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이에 후난성(湖南省) 창사시(長沙市) 동쪽 교외 마왕퇴(馬王堆)라고 하는 야산 중턱에서는 방공호를 건설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세계 고고학계를 뒤흔든 마왕퇴 한묘(漢墓. 한나라시대 무덤) 발굴은 이렇게 서막이 올랐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마왕퇴는 전한(前漢)시대 봉건제후국 중 하나인 장사국(長沙國)의 넘버2인 승상(丞相) 이창(利蒼)의 집안 공동묘지였다. 

이를 계기로 1974년까지 주변까지 발굴을 벌인 결과, 마왕퇴에서는 모두 3기에 이르는 무덤이 발굴됐다. 이창 자신과 그의 부인 신추(辛追), 그리고 아마도 그의 아들이 묻혔을 무덤이 발견됐다. 마왕퇴 발굴이 경천(驚天)하고 동지(動地)할 만한 사건인 까닭 중 하나는 신추의 미라 출현이었다. 2천100년 이상이 지나서도 매장 직후 상태를 얼마나 생생하게 유지했던지 시신을 꺼낸 직후 손가락으로 피부를 눌렸다가 떼자마자 그 자리가 곧바로 솟아올랐다는 일화를 남긴다. 

의학자들은 해부를 통해 신추가 50세 전후에 사망했으며, 참외씨가 위장에서 발견된 점으로 보아 여름철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류마티즘 비슷한 질환으로 고생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신장 154㎝에 발견 당시 체중은 34.3㎏. 이 미라를 토대로 실물 복원한 신추 인물상은 마왕퇴 전문박물관인 장사시 후난성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다만 50대 여인 모습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음인지, 30대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 신추가 관람객을 맞는다. 


맛배지붕 무덤 속 네 해골

2007년 12월22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경남 창녕군 송현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을 공개했다. 이 때 속살을 드러낸 무덤 중에서도 15호분이라는 넘버링이 이뤄진 한 무덤은 압권이었다. 우선 이 무덤은 이 송현동 고분군 중에서도 규모가 큰 축에 속했다. 흙을 원형으로 쌓아올린 봉토(封土) 중심부 지하에다가 남-북 방향으로 중심축을 둔 단면 사다리꼴이자 평면 장방형인 석실(石室)을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 석실은 길이 8.56m에 너비 1.70m, 높이는 2.25m였고, 바닥 평면 면적은 14.5㎡였다. 깊은 동굴을 연상케 한다. 

오래 전에 도굴로 보아 중요 유물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석실 남쪽 벽 근처에서는 무덤 주인공 시신을 놓았던 길이 2.70m짜리 단(壇)이 드러났고, 그 반대편(북쪽 벽)에서는 순장자 4구의 해골과 토기를 비롯한 관련 부장품이 발견됐다. 무덤 주인공인 주(主) 피장자는 머리를 남쪽, 다리는 북쪽으로 둔 데 비해, 그 반대편 순장자 시신 4구는 모두 석실 너비 방향, 그러니까 주 피장자와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머리는 동쪽으로 둔 채 배치됐다. 

석실 북쪽 벽면에 바로 붙어 발견된 순장자 인골은 왼쪽 귀에서 금귀고리 1점이 발견됐다. 이 순장자는 인골 출토 상황으로 보아 석실 천장, 즉, 하늘을 바라보며 반듯한 모습으로 누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당시 이 인골에 대한 잠정 추정은 골반뼈를 통해 성별로는 여성이며, 성장판이 이미 닫힌 것으로 보아 20~30대 성인으로 파악했다. 다만 뒤에서 보게 되듯이 이런 추정은 상세한 분석이 이뤄지면서 많은 대목에서 수정이 이뤄진다. 

당시 현장에 있던 나에게 유독 이채로웠던 대목은 무덤 석실 전체 구조가 완연한 맞배지붕형 건물을 본 뜬 모습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무덤 구조는 내가 알기로는 선례가 거의 없다. 전체 석실 중 3분의 1 가량이 외부로 완전 노출된 15호분, 특히 그 중에서도 석실(石室)은 사다리꼴 몸통을 마련하고 그 위는 대형 판돌 8장으로 천장을 얹고는 다시 그 위에는 단면 정삼각형으로 깬돌을 쌓아 올린 모습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맞배지붕형 건축물을 본 뜬 양식이었다.   

해골에 피부를 걸쳤더니 팔등신이

이후 가야문화재연구소는 본격적인 인골 연구에 착수한다. 피부까지 탱탱한 참외씨 여인의 미라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악조건이었지만, 해골에서 얻어낸 성과는 신추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컴퓨터 단층촬영(CT)과 3차원 정밀스캔, DNA와 안정동위원소 분석,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의 최신 과학 기법을 동원한 결과 순장자 4명의 성별과 식습관을 알아냈다. 이를 통해 순장자들은 수수, 기장, 조 등과 같은 잡곡보다는 쌀, 보리, 콩 등을 주로 섭취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무덤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차지한 남성 순장자는 유독 육류 섭취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한 이는 금동 귀고리 한 쪽만을 찬 채 발견된 여성 순장자였다. 분석 결과 이 여성은 죽을 때 나이가 16세 혹은 16.5세, 그리고 아마도 15호분에 묻힌 주인공에게 봉사하던 시녀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명났다. 성장판이 닫혔다고 잠정 판정됐지만, 정밀 조사에서 그 반대임이 드러났고, 무릎 쪽 인골이 많이 닳아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꿇는 일에 종사하는 여인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나아가 이 여인은 뒤통수뼈에서 다공성 뼈과다증이 보여 빈혈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 원인은 영양결핍, 급성감염, 기생충 감염 등이 제시됐다. 치아에서는 충치가 여러 개 보였고, 사기질형성저하증으로 인한 사기질 결손이 발견돼 입으로 무엇인가를 많이 물어뜯는 일에 종사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분석과 더불어 약 1500년 전 가야계 무덤에 순장된 이 여성을 복원하는 사업도 병행됐다. 그 성과는 최근 공개돼 언론보도를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여러 기관 및 개인과 협조해 완성한 이 여성은 최종 키 153.5㎝. 신추와 대략 같다는 점이 이채롭다. 턱뼈는 짧고 얼굴이 넓으며 목이 긴 미인형이라고 한다. 팔은 짧지만 허리는 21.5인치로 평균 26인치인 현대 여성이 부러워할만한 8등신에 가까웠다. 

이런 복원 모델이 사실 이 여인의 생전 모습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했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골 분석을 통해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한 수많은 정보를 얻었으며, 더구나 그 복원까지 시도했다는 점은 분명 획기적인 시도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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