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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백마강을 낀 사비도성 북쪽 성벽

by taeshik.kim 202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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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ins of Buyeo Naseong Fortress built during Baekje in the 6th century discovered
연합뉴스  / 2021-07-13 13:51:25

 

 

Ruins of Buyeo Naseong Fortress built during Baekje in the 6th century discovered

SEOUL, July 13 (Yonhap) — During the reign of the Baekje Kingdom in Buyeo, Chungcheongnam-do, which was called Sabi at the time, built a city wall to protect the capital, which is now called the Sab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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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나성, 혹은 사비도성이라 일컫는 사비도읍기 백제 왕도 외곽 방어시설 혹은 경계시설에 대한 발굴조사도 참말로 자주 있다. 이젠 앵간하면 그만 팠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판다. 구조가 드러나지 않은 것도 아니요, 축조한 시기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암튼 이번에 또 깠다. 깠는데 그 성문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먼저 그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조사단에서는 북나성北羅城 성문이라 했으므로, 아마 북쪽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다. 

그 위치를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400-3번지 일원이라 했으므로, 지도에서 짚어본다. 

 

보니 북쪽은 맞다. 부소산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지점 금강과 인접하는 지점이다. 저짝에 성문이 있다? 대체 왜?

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번에 발견한 흔적이 성문이 맞다면(이리 말하는 까닭은 성문이 아닐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주시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공주와의 관계, 둘째 금강 수계와의 관계가 그것이다. 좀 더 자세히 본다.

 

  

먼저 공주와의 관계에서 백제시대 공주랑 부여를 잇는 도로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다. 이건 아마 조선시대 옛 도로를 보면 대강 짐작할 터인데, 나당연합군에 포위되자 의자왕이 졸라 도망을 쳐서 웅진성으로 숨어들었는데, 그 통로가 육로였을까 수로였을까? 

아무런 의심없이 육로를 상정하는 걸로 알지만 수로일 가능성도 내치지 못한다. 암튼 현재 공주와 부여를 잇는 백마강변에는 강변도로가 나 있다. 이 도로가 그 옛날 백제시대에도 운용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것이 나성 북성문이 맞다면, 저짝으로 의자왕이 도망친 문이며, 저짝을 통해 부여와 공주가 연결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건 수로라는 관점에서 북문을 조망해 보고자 한 것이다. 북문이 있는 걸 보면 저 일대 근처 어딘가에 분명 나루가 있었을 것이다. 이 북문을 통해 금강수계를 통해 오가는 물자가 상륙하고 바다로 나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발굴한 흔적이 성문이 맞을까?

조사단은 그리 추정했거니와,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다만, 확정을 하기에는 조사 면적이 너무 좁다는 점이 흠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을 통해 부여군에서 배포한 이번 조사성과는 아래와 같다. 판단은 독자들한테 맡긴다. 

이거 보면, 금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천이 있다. 육상교통보다는 수로 물류 소통에 주안점을 둔 성문이 아닌가 하는 심증이 간다. 

 

백제 사비도성의 외곽성, 부여 나성에서 북쪽 출입시설 확인
- 문화재청, 부여군과 함께 나성 축조공법과 구조 등 추가조사로  실체규명 계획 -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부여군(군수 박정현)에서 추진하고 있는 ‘부여 나성(북나성) 10차’ 발굴조사에서 북쪽 출입시설(북문지, 北門址)이 확인되었다.  
  * 문지(門址): 문이 있던 자리
  * 조사지역: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400-3번지 일원 / 조사기관: (재)백제고도문화재단 
  
부여 나성은 백제 사비도성의 외곽성으로 도성을 보호하고 도성의 내ㆍ외부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외곽성은 사비 천도(538년)를 전후한 시기에 쌓은 것으로 사비도성이 계획도시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핵심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는 부여 나성 중 북나성에 대한 10차 발굴조사로, 북나성에서 부소산성으로 이어지는 성벽의 진행 방향과 축조양상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오는 10월까지의 일정으로 실시되고 있다. 도성 내‧외부를 연결하는 외곽성 문지는 모두 5곳으로 추정되며, 이중 동나성 2곳(동나성 2ㆍ3문지)에서만 그 실체가 확인되었으나,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북나성 문지가 확인되었다. 

 

백마강에서 바라본 조사지점. 백마강과 실개넌 사이 둔덕은 아마도 둔치로 근대에 조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데 백제시대에는 물이 앞짝까지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북나성 문지는 통로를 중심으로 동쪽부분의 성벽만 확인되고, 서쪽은 유실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문지의 성벽은 석축부가 최대 4단(약 1.2m)이 남아있고, 가증천의 제방에 접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다가 급하게 남쪽으로 꺾어져 진행되며 조사지역 너머로 연장되는 구조다. 문지의 형태는 바깥쪽이 넓고 안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양상으로 1998년에 조사된 동나성 3문지와 유사하다. 

사비도성 외곽성 북문지는 도성 내로 진입하는 명확한 출입시설로, 도성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교통로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특히, 가증천과 백마강이 합류되는 지점에서 동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으로, 이 일대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포구인 북포(北浦)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번 조사결과는 육상과 수로로 연결되는 백제의 교통체계를 밝힐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다.  

 

실은 좀 복잡하다. 문지라고 추정하는 데를 과연 성문으로 볼 수 있느냐? 이게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주변으로 보니 사유지 논이 있는 까닭이다. 



문화재청은 조사를 계속해 문지에서 동쪽으로 연결되는 성벽의 실체를 파악하여 산지와 저지대 등 지형에 따라 변화되는 나성의 축조공법과 구조 등을 규명할 예정이다. 그동안 북나성 구간에서는 성벽구조, 치(雉), 성내 건물지, 문지, 교통로 등 다양한 백제 유적이 확인되고 있어, 향후 이 일대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 결과가 더욱 기대되는 곳이다. 
  * 치(雉): 방어에 효율적이도록 성벽에서 의도적으로 각지게 돌출시켜 축성한 부분(=치성, 雉城)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부여군과 함께 백제왕도 핵심유적인 부여 나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지원하여 백제 사비기의 도성제를 규명하고, 백제 왕도의 실체복원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현장 공개계획을 수립하여 학계,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사비도성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밝혀나갈 계획이다.

 

실선을 따라 가보면 문지로 추정한 데가 움푹 들어간 흔적이 있다. 문이 있던 자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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