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매지권 판독재고(김영관) .pdf
무령왕릉 발굴. 1971. 7
백제 무령왕릉 출토 지석과 매지권 판독 재고
百濟武寧王陵出土誌石と買地券判讀再考
김영관 忠北大學校 史學科 敎授
出典 : 《韓國古代史探究》 30, 韓國古代史探究學會, 2018, 12.
【抄錄】
이 논문은 1971년 발굴된 이후 일치된 견해를 내지 못한 부령왕릉 출토 왕과 왕비의 지석과 매지권을 새롭게 판독하고 해석한 결과이다. 그 결과 무령왕 지석의 맨 마지막 글자 한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었다. 무령왕 지석의 마지막 글자는 '穴‘, ‘冢’, ‘印’, ‘家’ 등으로 판독해 왔으나, ‘尔’로 판독했다. 무령왕비 지석 중 과거에 ‘大妃’로 판독했던 글자는 ‘太妃'임을 밝혔다. 매지권 중에서 "百濟斯麻" 다음에 오는 글자는 '王'이 아니라 '主'라는 것을 찾아냈다. 아울러 ‘訟' ‘詣' '詴' ‘詢' 등으로 판독한 글자는 '詢’이 분명함을 확인했다. 또한 ‘衆官’ 앞에 오는 글자는 ‘上下'가 아니라 ‘圡下’임을 밝혔다. 이처럼 새롭고 정확한 판독을 한 결과에 따라 해석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또한 무령왕 지석의 “登冠”은 地名으로 보았다.
무령왕 지석의 판독문과 해석은 다음과 같다.
“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年六十二歲癸卯年五月丙戌朔七日壬辰崩到乙巳年八月癸酉朔十二日甲申安厝登冠大墓立志如左, 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나이가 62세인 계묘년 병술일이 초하루인 5월 7일 임진일에 돌아가셨다. 을사년 계유일이 초하루인 8월 12일 갑신일에 등관에 있는 대묘에 안장하였다. 묘지는 이와 같이 기록한다. 끝"
무령왕비 지석의 판독문과 해석은 다음과 같다.
"丙午年十一月百濟國王太妃壽終居喪在酉地已酉年二月癸未朔十二日甲午改塟還大墓立志如左"
"병오년 11월 백제국왕의 太妃가 돌아가시니 酉地(서쪽)에서 居喪하였다. 기유년 초하루가 계미일인 2월 12일 갑오일에 고쳐 장사지내어 大墓에 돌아가도록 했다. 묘지는 이와 같이 기록한다.“
매지권의 판독문과 해석은 다음과 같다.
"錢一万文右一件. 乙巳年八月十二日寧東大將軍百濟斯麻, 主以前件錢詢圡王圡伯土父母圡下衆官二千石, 買申地爲墓故立券爲明, 不從律令."
錢1만문,
이상 1건 을사년 8월 12일 영동대장군인 백제 사마가 한하여 앞 건의 錢으로 圡王과 圡伯, 土父母, 圡下衆官二千石에게 물어 申地(남서쪽)의 토지를 사서 墓로 삼는다. 그런 까닭으로 문서를 만들어 밝히니 율령을 따르지 않는다.
무령왕비 墓券
この論文は、1971年に發掘された以後一致した見解を出さなかった武寧王陵出土王と王妃の誌石と買地券を新たに判讀し解釋した結果である。その結果武寧王誌石の最後の一文字を除外しては、すべての正確な判讀ことができた。武寧王誌石の最後の文字は「穴」、「冢」、「印」、「家」などで判讀してきた、「尔」に判讀た。武寧王妃誌石中過去に「大妃」に判讀た文字は、「太妃」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た。買地券中で「百濟斯麻"の後に来る文字は「王」ではなく「主」ということを見つけた。また、「訟」「詣」「詴」「詢」などで判讀した文字は「詢」が分明であることを確認した。また、「衆官」の前に来る文字は「上下」ではなく「圡下」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た。このように新しく正確な判讀をした結果に基づいて解釋も更新することができた。また、武寧王誌石の「登冠」は、地名に見た。
武寧王誌石の判讀文と解釋は以下の通りである。
“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は年齢が62歲の癸卯年丙戌日が一日である5月7日壬辰日に亡くなった。乙巳年癸酉日が一日である8月12日甲申日に登冠の大墓に安葬た。墓誌はこのように記錄する。最後に”
武寧王妃誌石の判讀文と解釋は以下の通りである。
"丙午年十一月百濟國王太妃壽終居喪在酉地已酉年二月癸未朔十二日甲午改塟還大墓立志如左"
“丙午年11月百濟國王の太妃が死ぬと酉地(西)で居喪た。己酉年の一日が癸未日の2月12日甲午日にさ登冠の大墓に戻るようにした。墓誌はこのように記錄する”
買地券の判讀文と解釋は以下の通りである。
"錢一万文右一件. 乙巳年八月十二日寧東大將軍百濟斯麻, 主以前件錢詢圡王圡伯土父母圡下衆官二千石, 買申地爲墓故立券爲明, 不從律令."
錢1萬文
以上1件. 乙巳年8月12日寧東大將軍の百濟斯麻が主管して前件の錢に圡王と圡伯、土父母、圡下衆官二千石に聞い申地(南西)の土地を買って墓とする。そんなわけで文書を作成し明らかにしたら律令に従わ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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