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우리 연구실이 진행하는 해외 협력연구에는 얼마 전까지 연재한 인도에서의 연구가 있고, 또 하나는 러시아. 구체적으로는 서(西)시베리아 지역에서 진행하는 연구가 있다.
러시아에서는 Tyumen 지역에 위치한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 분원 (Siberian Branch, Russian Academy of Sciences) 산하 북방문제연구소(Institute of the problems of Northern development)와 협력 연구를 진행한다.
이 연구도 나름 연륜이 쌓여 이제 3년째를 맞이했다.
러시아 북방문제연구소 소장인 바가세프 (Bagashev) 선생과 함께. 왼쪽부터 우리 연구 러시아쪽 파트너인 세르게이 슬렙첸코 박사, 연구실 박사수료생 홍종하군, 바가셰프 선생, 필자, 같은 박사 수료생으로 국방부 유해감식단 감식관으로 근무 중인 이혜진 선생.
지난 주에 우리 연구실은 동계 연구를 위해 Tyumen 시에 다녀왔다.
해당 연구소에 있는 인골과 미라를 조사하여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미라, 인골과 비교하는 작업인데, 이미 성과를 낸 부분도 있고 현재 진행 중인 작업도 있다. 그 연구 내역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 자리에서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각설하고, 우리 연구실이 Tyumen시까지 접근하는 방법은 비행기만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비행기와 기차를 함께 타는 두 가지가 있다.
물론 비행기만 이용한다면 훨씬 편하지만 일정상 접근이 어려운 때가 있다. 이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노보시비리스크 (Novosibrisk) 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다음, 시베리아 횡단철도 구간을 따라 Tyumen까지 가야 한다. 말은 쉽지만 기차로 무려 16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이다. 사실 별것 아닌 기차 여행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할 기회가 많지 않고 시베리아라는 지리적 공간상 일종의 낭만적 상상도 많은 것 같다.
아주 의미없는 정보는 아닐 것 같아 이번 회에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이용 경험을 좀 써 보기로 한다.
사실 시베리아 횡단철도라고 했지만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달리려면 일주일은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전 구간을 달린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간 것이니 사실 다루는 구간은 노보시비리스크에서 튜먼까지 이르는 짧은 (?) 구간이다.
시베리아에서 연구는 주로 여름에 이루어져 우리도 이 시기에 이 지역을 방문했지만 금년 겨울에는 일정상 부득이하게 (피하고 싶었음에도) 1월에 이 지역을 방문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노보시비르스크와 투먼 구간을 여름과 겨울, 왕복 총 4번을 기차로 16시간을 달리게 되었다. 노보시비르스크에 비행기로 내리면 역까지 버스로 이동하는데 약 4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노보시비르스크 공항에 걸린 달
공항에서 노보시비르스크 역 행 버스를 기다리는 홍종하 선생
노보시비르스크 역
우리의 경우 이용한 객실은 2등석. 2등석이 있으니 1등석이 있겠지만 1등석의 경우는 한국에서 예약이 불가능하다는 우리 연구실 종하군 설명.
어차피 2등석도 내게는 큰 불편은 없었는데 조금 괜찮은 시설을 선호하는 분은 1등석이 나을 것 같기도.
노보시비르스크 역사. 사회주의 국가 건물 특유의 고풍스러운 맛이 있다.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2등석의 경우 여름에는 냉방이 없다. 하지만 기온이 높지 않아 시원하므로 별 문제가 없다.
우리가 정작 걱정한 것은 겨울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시베리아 겨울은 따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베리아 바깥 기온이 아무리 춥건 간에 건물 안, 그리고 기차 안은 반팔을 입고 다녀도 될 정도로 높은 기온을 유지할 수 있게 난방을 따듯하게 가동했다는 것이다. 난방에 관한 한 우리보다 훨씬 낫다. 겨울에는 바깥을 나돌아다니는 때를 빼면 어마무시한 추위 속에 잠을 청해야 하는 경우는 없었다.
아래 사진은 겨울 시베리아 횡단 철도 풍경이다.
전형적인 러시아 기차역의 전광판. 영어 없음.
키릴 문자를 모른다면 영원히 고통받아야 한다. 자동번역 기능이 있는 스맛폰 앱은 필수.
심야 횡단철도역 플랫폼. 노보시비르스크에서는 서쪽으로 가는 열차는 무려 1시간을 정차한다.
따라서 출발시간 보다 많이 일찍 가더라도 기차는 탈수 있다.
기차 앞에는 여객전무가 승객 신분증 (우리의 경우는 여권)과 침대칸 번호를 확인한다. 중간 정차역에서도 가끔 내리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 여권과 승차권은 반드시 지참할 것. 승차권과 신분증이 없는 사람의 승차는 여객전무가 일차적으로 막는다.
뭔가 굉장한 분위기의 러시아 해군 잠수함... 이 아니고 화물열차
객차는 괜찮다. 믿을 만 하고 안전하다고 본다. 정거장 마다 역무원이 계속 열차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을 보았다.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매우 안정적이었다. 다만 기차가 좀 많이 흔들리는 게 아쉽다.
기차가 열심히 달리다가 정차하는 역. 옛날 여름에 달릴 때는 30분씩 정차하는 역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역이 없고 15분 정차가 가장 길었다.
30분씩 정차할때는 역 바깥도 나가보고 안에서 간단한 먹거리도 사서 탈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적어도 노보스브리스크-투먼 구간은 식사할 거리를 들고 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사진의 두 인물은 우리 연구실 박사수료생 이혜진 선생과 홍종하 선생.
러시아 정차역에는 개도 있다
객차 내부. 왼쪽에 침대칸이 있고 정면에 보이는 공간은 복도다. 오른쪽 창문 바깥으로 경치가 보인다. 복도에서 보는 경치보다는 침대칸에서 보는 경치가 더 낫긴하다. 겨울에는 창문을 열 수가 없었는데 여름에는 창문도 살짝 열어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맛도 괜찮았다.
복도 창밖으로 보이는 시베리아 겨울 풍경
침대칸 내부. 가운데 간단한 테이블이 있고 좌우 위아래로 총 4개의 침대가 있다. 내부는 크게 불편하지는 않은데 짐이 많다면 비좁을 수 있다.
여행 중 먹을 것은 다 들고 타야한다. 기차에서 음식을 팔기는 하는데 별로다. 중간 역에서도 요즘은 구입이 어려운 듯 하다.
침대칸을 타면 베게와 덮을 거리 (시트)는 제공한다. 깨끗하다. 만족스럽다. 여름에는 당연히 이 시트 정도로도 지내는데 문제 없고 겨울은 문제가 있을것 같지만 객차 내가 엄청나게 따듯해서 역시 제공하는 시트로 Ok. 객차 내부에는 충전 가능한 콘센트가 있다. 전기 문제도 걱정 없다.
창문밖으로 보이는 풍경. 이런 풍경이 16시간 동안 이어진다. 닥터지바고에 나오는 자작나무가 끝없이 이어지고 산이 거의 없는 풍경이다. 닥터 지바고는 핀란드와 스페인, 그리고 캐나다에서 촬영했다. 지평선만 16시간을 본다.
침대칸 아래 침대에 누웠을 때 가장 많이 보이는 장면. 침대칸은 깨끗하고 잘 유지되어 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같이 침대칸 안에서 생활하는데 거의 불편을 서로 끼치는 경우가 없고 사람들은 부자는 아니지만 정중하다.
러시아 사람들의 전반적 민도를 기차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차를 타면 내가 어디쯤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처럼 표시되는 사인보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 맵으로 자기 위치를 보면 정확히 이렇게 뜬다. 기차에 와이파이는 없다. 하지만 러시아 유심을 사서 데이터를 쓸 수 있으면 기차에서도 인터넷은 가능하다. 인터넷이 전구간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도시에 가까와지면 되었다가 들판으로 나가면 안 되다가 한다. 1년반 전에 러시아 기차를 탔을 때와 비교하면 인터넷이 안 되는 구간이 현저히 줄었고 일부 도시에는 LTE까지 되는 등 발전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기차에 설치된 보일러. 따듯한 마실물을 연중 공급한다. 커피나 차, 라면 등 자유로이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러시아에서 우리 작업은 이 지면을 빌어 더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이라 보고 후일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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