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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양반의 일상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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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의 삶은 우리가 드라마로 접하는 것보다는 훨씬 다채로웠다.

죽을 듯이 공부만 하는 양반도 있었고, 신분은 양반이지만 일자무식 수준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오늘날 보통의 우리처럼 적당히 정의롭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았다.



사서삼경을 열심히 공부해서 입신출세를 노리기도 하고, 의학, 농업, 수학 따위의 실용적인 것도 적당히 배워야 했고, 절을 찾아 다니며 승려들과 즐기기도 했으며, 노장의 서적을 읽으며 도인들과도 어울리기도 하였다.

추담 김우급이라는 인물은 불과 20여 년에 걸쳐 쓴 4천여 수를 남겼으나 조선시대에 문집으로 간행되지 못하고 일제강점기 초에야 발간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문집을 발간하려면 일정 기준에서 산삭해야 했지만, 그러기 어려웠다.

그의 시에는 양반이면 그렇지 않아야 할 내용이 적지 않게 있었다. 오히려 그런 산삭을 거치지 않았기에 진사에 오른 적당한 지식인에, 요월정이라는 명승의 다소 풍족한 양반의 삶을 잘 보여준다. 아래 시는 그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잡흥(雜興)〉

수고 덜려 하나 도리어 일이 많고 省事還多事
허울 숭상해도 허울뿐인 건 아니요 崇虛未盡虛
스님과 함께 좋은 약초 찾아다니고 同僧尋藥草
촌로 초대하여 농서의 지식 묻는다 邀老問農書
대밭 빽빽하여 달 보기 좋지 않고 竹密嫌看月
연잎 무성하여 낚시질을 방해하네 荷繁害釣魚
《주역》의 끈이 끊어질 지경이건만 易編將欲絕
울 밑의 국화 또 누가 김을 메나 籬菊且誰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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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의……지경이건만 :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고사로, 책이 다 떨어질 때까지 부지런히 읽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말년에 《주역》을 좋아하여 많이 읽어 죽간(竹簡) 《주역》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한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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