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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여말선초 사전私田은 딱 불교 정도의 욕받이

by 초야잠필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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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의 사전은 지금 한국사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공공의 악이 아니었다. 

무슨 소린가 하니 그 당시 사전은 딱 불교 정도의 욕받이였다는 말이다. 

여말선초 불교를 공격하면서 하는 것도 없이 염불만 하며 곡식만 축낸다, 이것인데 이거야 불교만 그렇겠는가? 

모든 종교가 다 그렇다 할 것이다. 

이걸 공격을 한다면 지금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찬란한 불교문화는 어떻게 나오겠는가? 

사전私田이 그렇다. 

사전 대신 공전公田이 정의다, 라고 하는 게 지금 한국사의 스탠스다. 

아니다, 우리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냉정히 한국사를 한 번 들고 읽어 보기 바란다. 

당시 사전을 쓸어버리고 공전 일색으로 만든 과전법체제, 이것을 찬상하며 조선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옹호한 것이 현재 한국사 기술이다. 

한국사에서 사전은 딱 불교 정도의 스탠스다. 

공공의 적? 무슨 공공의 적. 당시 사전이 없는 나라가 없었는데. 

사전을 없앤다고 해서 정작 논 일하고 밭 갈던 농민들이 그 혜택을 바로 받은 것도 아니다. 

과전법은 그 역사적 의미부터 뿌리부터 뒤집어 다시 봐야 한다. 

그 첫 번째 작업은, 

주변 국가-중국과 일본이 그렇다면

그 나라들에서는 사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었는가를 먼저 보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일본은 중세를 거치면서 전국의 땅이 장원 중심으로 편제되어 걔들도 송곳 하나 꽂을 곳 없기는 우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덴노天皇의 장원정리령荘園整理令을 그 누구도 역사적 순리라고,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나간 물, 흘러가버린 물이기 때문이다. 

사전은 불교와 더불어 여말선초에 급조된 욕받이 들이다. 

사전과 불교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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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사전개혁 평가는 해방 후 토지개혁사관이 투영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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