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유성환
카나본 경: “뭔가 보이는 게 있나” (Can you see anything?)
하워드 카터: “예. 근사한 것들이 보입니다!” (Yes, wonderful things!)
1922년 11월 26일 오후 4시 하워드 카터 Howard Carter(1874-1919년)와 제5대 카나본 백작 조지 허버트 경 George Edward Stanhope Molyneux Herbert, Fifth Earl of Carnarvon(1866-1923년), 그리고 그의 딸 이블린 Evelyn과 카터의 조수 아서 캘린더 Arthur Robert Callender(1875-1936년) 일행은 신왕국 시대 제18 왕조 투탕카멘 Tutankhamen (기원전 1336-1327년) 왕묘(KV 62) 입구에 서 있었습니다.
카터는 봉인된 두 번째 입구에 작은 구멍을 뚫어 내부에 유해한 가스가 있는지 확인한 후 촛불을 들고 안을 비춰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뜨거운 공기가 방에서 새어 나와 촛불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눈이 빛에 익숙해지면서 부옇고 흐릿한 배경 속에서 점차 방의 세부적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한 동물들, 조각들, 그리고 금 – 어디든 금빛으로 빛났다.”
그가 왕묘를 개봉했을 때 그들은 파라오 시대 이후 누구도 보지 못한 황홀한 유물들과 마주했습니다. 바로 카터가 앞서 말한 “근사한 것들”(wonderful things)과 마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917년 카터는 신왕국 시대 제19 왕조 람세스 6세 Ramesses VI(기원전 1143-1136년)의 왕묘(KV 9) 입구 아래쪽을 파내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자신이 투탕카멘 왕묘에 얼마나 가까이 근접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수천 년 전 잔해에 파묻힌 장인들의 오두막 터를 발견한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작업을 중단해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결정 배후에는 람세스 6세 왕묘를 관람하러 오는 관광객들의 이동경로를 차단할 수도 있다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는데 발굴로 파낸 흙들이 람세스 6세 왕묘 입구를 막아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다음 시즌에도 카터는 다른 곳에서 탐사작업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922년 11월 1일부터는 신왕국 시대의 장인들이 머무른 오두막 터에 대한 발굴작업을 재개했습니다.
그해 여섯 번째 시즌에 해당하는 발굴작업이 시작되기 전 5년 간 기나긴 탐사작업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한 카나본 경은 발굴팀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고자 했지만 카터는 그를 간신히 설득해 한 해만 더 발굴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바 있었습니다.
카터로서는 이번이 재정적인 고민 없이 안정적으로 발굴을 진행할 수 있는 마지막 시즌이었던 것입니다.
1922년 11월 4일 발굴작업을 시작한지 3일만에 낭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일꾼 중 한 명이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발견한 것입니다.
현장에서 카터는 잔해를 말끔하게 들어내고, 그 아래 쌓여있던 돌무더기들을 치웠습니다. 그러자 묘지로 향하는 첫 번째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계단 아래에는 벽으로 막힌 입구가 있었으며 입구에는 모양이 서로 다른 6개 타원형 봉인이 찍혀있었는데 그 중 5개에서 투탕카멘 즉위명인 넵케페루레(Nebkepherure)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지의 소년왕 투탕카멘 왕묘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카터는 입구를 막고 있는 벽에 작은 구멍을 뚫어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잡석 더미가 가득 차 있는 공간이 보였습니다.
그 다음날인 11월 5일 카터는 영국에 있는 카나본 경에게 왕묘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전보로 통지했습니다:
“마침내 계곡에서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졌습니다. 봉인이 훼손되지 않은 굉장한 무덤입니다. 경께서 도착하실 때까지 그대로 두겠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왕묘의 공식적인 개봉은 발굴을 후원한 카나본 경이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미루어질 예정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주 후 카나본 경과 그의 딸 이블린 양이 마침내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 도착했습니다.
입구를 개봉하기 전 카터는 입구 왼쪽 상단에 나중에 봉인된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봉인된 이후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였습니다.
입구를 막은 벽이 제거되자 왕묘의 전실(前室: antechamber)로 이어지는 긴 복도가 나왔습니다. 여기에서도 카터는 왼쪽 상단에서 앞에서와 유사한 침입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왕묘 상태가 어떨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카터는 봉인된 두 번째 입구에 작은 구멍을 뚫어 내부에 유해한 가스가 있는지 확인한 후 촛불을 들고 안을 비춰보았습니다. 이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카나본 경이 카터에게 말을 건넵니다.
"뭔가 보이는 게 있나?"
수천 년 간 계곡 아래 잠 자고 있던 투탕카멘 왕묘가 전 세계 관심과 찬탄 속에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습니다.
***
이 글을 쓴 유성환 박사는 정통 이집트학도로 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나는 다음과 같이 하기도 했다.
[All about Egypt]
참말로 독특한 이력...
대통도 두 마리나 배출한 그 유메이나한 고등핵교 경남고를 나와 부산대 영문학과를 댕기다가, 나 동시통역으로 벌어물끼다 하고는 한국외대에서 동시통역대학원을 댕기다가
느닷없이 나 이집트 공부할끼다 하고 미국으로 훌쩍 날라 그짝 브라운대학인지 하는 데서 고대이집트학으로 박사를 취득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를 모시는 연합뉴스 K컬처아카데미 강좌도 있으니 아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https://www.yna.co.kr/2022-site/traveler02
그의 연재물을 나는 주로 페이스북 그의 홈페이지에서 접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바란다.
https://www.facebook.com/sunghwan.yoo.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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