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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장군 남오성, 평균키 190㎝를 우뚝 솟은 에베레스트

by taeshik.kim 2019.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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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cm tall Joseon dynasty era General mummy


According to statistics, the average height of adults during the Joseon dynasty era is 161.1 cm for men and 148.9 cm for women.


Among the mummies of the Joseon era, there was a giant Titan whose height reached 190 cm.


He was Nam Oseong (1643-1712), who served as Samdo Sugun Tongjesa 三道水軍统制使, the Naval Commander-in-chief of the Three Provinces. 


身長190cm朝鮮時代の三道水軍統制使

統計によると、朝鮮時代の成人の平均身長は、男性で161.1 cm、女性で148.9 cmです。

朝鮮時代のミイラの中には、身長が190cmに達した巨大なタイタンがいました。

彼は南五星(1643-1712)で、三道の海軍司令官, 三道水軍統制使を務めました。



조선시대 성인 기준 평균 키는 남녀 성별로 어느 정도일까? 지금은 국민소득 증대와 식문화의 전반적인 서구화로 그 체형이 무지막지하게 커졌지만,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한민족은 땅꼬마에 가까워, 막연히 그보다 더 사정이 좋지 않은 조선시대는 악화한 상황이었으리라 막연히 짐작커니와, 이는 같은 민족임에는 분명하나, 남한에 견주어 영양 상태 훨씬 열악한 북한쪽 사정을 견줄 때 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통계다운 통계가 없는 조선시대에 평균키 값이 있을 리 만무한 법. 다만 그 평균치 사정을 엿볼 만한 자료는 없지 않으니, 그런 점에서 무수한 출토 사례를 보고한 인골 혹은 미라를 통한 통계치 산출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점은 여간 다행이라 하지 않겠다. 


이를 토대로 한 조선시대 성인 기준 남녀 신장 평균치가 산출된 적이 있으니, 결론만 먼저 말한다면 남자는 161.1㎝, 여자는 148.9㎝라, 생각보다는 그리 작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야 많이 모자라지만, 그렇다고 그리 작지는 않았다. 이는 아마 인종적 특징에서 말미암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남오성 장군 미라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 사람들은 일본사람들을 왜倭라 했거니와, 이 倭는 키 혹은 덩치가 작다는 경멸이 있어, 그런 까닭에 그런 친구들이 안좋게 보일 때면 언제나 왜놈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동시대 일본 쪽 사정은 어땠을까? 일본인은 저런 조선사람들보다 물경 6㎝가 더 작았으니, 왜놈이라는 경멸이 썩 틀리다고만은 할 수 없다. 


2012.01.31 06:00:10


<조선시대 평균키 남 161.1㎝, 여 148.9㎝>

국내 첫 연구결과…서울대의대 15~19세기 유골 116명 분석

같은 시기 일본보다 6㎝ 이상 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김길원 기자 = 조선시대 우리 선조의 평균 키가 남성 161㎝, 여성 149㎝로 나타났다. 


우리 조상의 평균 키를 광범위하게 분석한 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의대 해부학교실 황영일·신동훈 교수팀은 15세기 이래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116명(남 67명, 여 49명)의 유골에서 채취한 넙다리뼈(대퇴골)를 이용해 평균키를 분석한 결과 남성은 161.1(±5.6)㎝, 여성 148.9(±4.6)㎝로 각각 분석됐다고 31일 밝혔다.


이는 2010년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이 조사한 한국인 평균키(남 174㎝, 여 160.5㎝)에 비해 각각 12.9㎝, 11.6㎝가량 작은 수치다.


서울 중랑구 신내동 출토 미라. 한강문화재연구원 제공.



이번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은 미국 자연인류학저널(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 최신호에 실렸다. 


논문을 보면 연구팀은 골반과 무릎 사이에 뻗어 있는 넙다리의 뼈 길이를 재 전체 키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평균키를 추정했다. 이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현재 사용되는 유골의 키 측정법 가운데 가장 정확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 한국인의 평균키는 조선 초기인 15세기초부터 구한말인 19세기말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이는 중세시대에는 신장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가 19세기초 산업화와 함께 일시적으로 평균키가 급신장한 영국과 미국, 스웨덴, 프랑스 등의 서구 국가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15세기 이후 정체된 평균키가 20세기 초부터 급성장하는 특징을 보였다. 


조선왕조의 개화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늦어진 데다 19세기말에서야 비로소 근대화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1960년대 들어 산업화가 본격화된 점에 비춰보면 이 같은 추세가 설득력을 갖다는 게 연구팀의 해석이다.


국가별 비교결과를 보면 조선시대 남성의 평균키(161.1)는 다른 서구국가에 비해 크게 작았다. 하지만 일본에 비교하면 약 6㎝ 이상 컸다. 연구팀이 제시한 일본측 분석자료에 따르면 에도시대부터 명치시대까지 일본 남성의 평균키는 154.7~155.1㎝로 왜소했다. 


이런 수치를 볼 때 당시 조선사람이 일본인들을 작다는 뜻에서 '왜(倭)'라고 부른 것이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는 셈이다. 


비슷한 시기 서구국가들의 평균키는 스웨덴 169.6㎝(17세기), 영국 168.1㎝(12~18세기), 네덜란드 166.7㎝(17~19세기), 독일 169.5㎝(16~18세기), 포르투칼 165.7㎝(15~19세기), 미국 173.4㎝(17세기 후반~19세기 후반) 등으로 한국보다 훨씬 컸다. 


황영일 교수는 "조선시대에 평균키가 작았던 것은 영양 상태와 함께 질병 등의 보건 위생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성장기에 영양성분의 섭취가 부족하고 질병 등을 겪으면 키가 작아진다는 사실은 보건학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논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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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2012.01.31 송고]



내 키가 170센티인데, 이걸로 17~19세기 유럽이나 미국을 갔더라면, 나 역시 그네들한테서 왜놈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이런 땅꼬마 시대에도 돌연변이에 가까운 사람이 있어, 조선시대 미라 중에는 키가 무려 190센티에 달한 거인 타이탄족이 있었다.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한 남오성이라는 장군이 주인공이라, 이 양반 엄청난 멀대였다. 다음은 그에 대한 미라 발견 관련 소식을 나중에 내가 정리한 것이다. 


남오성묘 출토복식



2005.01.11 11:25:04


<신장 190㎝ 조선 삼도수군통제사의 무덤>

국립민속박물관, 남오성 묘 출토복식 정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02년 10월 10일 충남 태안군 태안읍 삭선2리 소재 의령남씨(宜寧南氏) 공동묘역에서 태안군 환경센터매립시설 진입로 공사를 앞두고 가선대부(嘉善大夫)이자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종2품)를 역임한 남오성(南五星, 1643-1712) 묘가 이장(移葬)을 위해 약 300년 만에 속살을 드러냈다. 


그 결과 이 분묘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양반 사대부가 묘제인 회곽묘(灰槨墓)임이 드러났다. 땅을 파 묘광(墓壙)을 만들고, 회(灰)로 덧널(槨)을 만든 다음 그 안에는 시신을 안치한 목관(木棺)을 넣었다.


조선왕조는 이미 개국과 더불어 왕을 필두로 사대부 묘는 이러한 회곽묘를 도입했다. 당장 조선왕조실록 태종 8년 7월 9일자 기사에는 태상왕(太上王) 태조 이성계 능실을 회곽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등장하고 있다. 


이 기사에는 회곽묘를 쓰는 이유로 "석회는 모래를 얻으면 단단해지고 흙을 얻으면 들러 붙어 여러 해가 되면 굳어져 전석(塼石, 벽돌)이 되어 개미와 도적이 모두 가까이 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도굴이라든가 곤충 등에 의해 시신이 손상됨을 막자는 취지에서 회곽묘를 고집했음을 엿볼 수 있다.


실제 요즘 발굴현장에서 이 같은 회곽묘는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사람 손만으로 회곽묘를 열 수는 없다. 굴착기를 동원해 깨뜨려야만 한다. 


회곽묘가 지금의 우리에게 남기고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워낙 밀폐성이 강해 매장 당시 모습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고, 때에 따라서 시신조차 미라 상태로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196센티 거구 야구선수 최희섭. 남오성은 키가 이만했다.



남오성 묘는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했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염습 풍속과 그 골자가 거의 다를 바 없는 상태로 각종 염습의가 출토됐다. 미라 상태인 남오성 시신에서 더욱 놀라운 점은 그 키가 190㎝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거 최희섭이 196cm라고 하니, 미라가 실제보다 줄어들었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남오성의 살아 생전 모습은 최희섭을 떠올리면 될 듯하다.


이 남오성 시신은 출토 당시 눈동자와 치아, 수염, 손ㆍ발톱, 성기 등은 물론 피부가 살색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었으나 후손들에 의해 곧바로 화장됐다. 그러나 남오성은 그의 시신을 장착했던 많은 복식유물을 남기고 다시 산화(散化)했다. 


이들 복식유물은 칠을 한 목관과 칠성판(七星板) 등과 함께 곧바로 국립민속박물관에 일괄 기증됐다. 복식은 단령 3건ㆍ대창의 4건ㆍ중치막 8건ㆍ소창의 15건ㆍ저고리 1건ㆍ바지 3건ㆍ허리띠 2건ㆍ관내 배접용 직물 1건ㆍ염포 1건ㆍ지요 1건ㆍ천금 1건ㆍ이불 2건ㆍ베개 1건ㆍ낭(주머니) 1건ㆍ악수 1건ㆍ멱목 1건ㆍ망건 1건ㆍ사모  1건ㆍ신발 1건의 모두 50건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출토복식에 대해 박물관은 2003년 8월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보존처리를 실시했다. 박물관에 최근 펴낸 유물보존총서Ⅰ 《남오성 묘 출토복식》은 이들 유물에 대한 보존처리 과정과 유물의 조사 연구성과를 총괄 정리하고 있다. 


이번 조사성과 중 복식 직물에 대한 심연옥 교수의 글이 주목된다. 이에 의하면 남오성 묘 출토복식은 대마포 1점을 제외하는 모두 견직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면직물과 모직물, 저마포는 한 점도 확인되지 않았다.


또 복식에서는 모두 34종류에 달하는 문양이 확인됐다. 구름 무늬를 형상화한 것이 있는가 하면 연꽃무늬, 석류꽃 무늬, 포도다람쥐 무늬 등이 있다. <사진있음>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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身長190センチ朝鮮時代将軍mummy


統計によると、朝鮮時代の成人の平均身長は男性が161.1㎝、女性は148.9㎝。


だが、このような時代にも突然変異に近い人ももちろんあり、朝鮮時代のミイラの中に身長がなんと190センチに達した巨人タイタン族があった。


三道水軍統制使を務めた南五星(1643-1712)。


2002年10月10日、忠清南道泰安郡台安邑素材宜寧南氏共同墓地で嘉善大夫であり、三道統制使(從二品)を務めた南五星墓が移葬のため、約300年ぶりに肌を露出した。


ミイラ状態である南五星体がさらに驚くべきことは、その身長が190㎝に達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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