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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토 이야기를 시작하는 김에 좀 더 써 본다.
오닌의 난 (1467)은 우리나라 조선 세조 때 해당하는 사건으로
일본에서 무로마치 막부가 사실상 붕괴하고 전국시대가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때가 되면 쿄토가 어떻게 바뀌는가.
![](https://blog.kakaocdn.net/dn/YjZ8v/btsDItKvlXM/d3VzOJ6xRfdXPHdqiLIcBK/img.png)
이렇게 바뀐다.
지금도 쿄토에 가면 상경上京과 하경下京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원래 헤이안쿄平安京 시대에는 상경과 하경이라는 지명은 없었다.
이 지명이 나오게 되는 것은 대략 오닌의 난 전후한 시기부터로,
무사들 사이에 싸움이 시작되니 쿄토가 초토화해서 시가지가 전부 사라지고
성채에 둘러싸인 두 개 시가지만 남게 된다.
이 중 북쪽의 상경과 남쪽의 하경인데
북쪽 상경이 바로 덴노가 살던 쿄토고쇼[京都御所]가 포함된 지역으로
지금도 쿄토 가면 볼 수 있는 니조성二条城이 있는, 쇼군 저택이 포함된 쿄토 정치 중심지다.
남쪽의 하경은 상업지구다. 이 두 지역이 각각의 성채로 둘러싸여 남았다.
하경 서편에 혼노지本能寺가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닌의 난 이후 전국시대에는 혼노지는 하경 성곽 바깥에 있었다. 지금은 쿄토의 중심지역에 있지만..
쿄토가 사실상 붕괴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때도 덴노는 여기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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