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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정독은 다독을 이길수 없다

by 초야잠필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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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이 있지만, 

정독은 다독을 이길수 없다. 

조선의 인문학이 에도시대 일본에게 뒤쳐진 이유이며, 

인간 기사들이 알파고에게 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독은 다독을 절대로 못 이긴다. 


조선시대에 통감通鑑 하면, 자치통감資治通鑑이 아니라 강지가 편집하고 주희의 찬으로 축쇄한 통감절요通鑑節要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나마 이 통감 축약판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특정 부분을 정독했을지 모르나 독서 범위가 굉장히 편중했다. 필수서적으로 알려진 책은 가짓수도 적었을뿐더러 마저 통독은 하지 않는경우가 많았다. 조선후기 인문학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뒤떨어지게 된 이유다.

 
 
*** 편집자注 ***
 

필자가 인용한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은 독서를 백편 하면,  의義가 저절로 드러난다는 뜻이라, 이는 아무리 어려운 말 혹은 개념이라도, 두루 독서를 하다 보면 그 의미를 자연히 알게 된다는 뜻이다. 

저 말이 우리 세대에는 고등학교 유일 국정교과서였던 국어 교과서에 수록한 양주동 선생의 기하幾何, 몇 어찌라는 글에서 인용함으로써 더욱 입에 착착 붙게 되었으니, 이 글이야말로 신학문을 접한 우리네 1세대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우뚝하게 증언하니 

 

무애无涯 양주동梁柱東(1903~1977)

 
서당에서 공부랄 것도 없는 형편없는 책들로 공부를 하던 무애 선생이 어찌하다 신식학교에 들어가 기하학이라는 학문을 접하고는 도대체 기하학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미를 종잡을 수 없어 여러 선생을 찾아다니며 물어 그 의문을 풀조자 하다가 어찌하여 수학 선생을 만나 기하학이 주는 묘미를 풀게 되었음을 유머를 곁들여 회고했으니 

나는 저 말보다는 그가 인용한 다른 말, 곧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徹하도록 읽는다는 말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눈을 부라리며 종이를 뚫을 정도가 된다는 뜻이라, 신학문이 이 땅에 상륙했을 무렵 그것을 접한 신이한 눈길과 그것을 해명하려는 사람들의 쟁투가 지금에 와서는 눈에 더욱 더 선하며, 그래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더 애처로이 본다. 

단순히 꼰대 혹은 라떼라는 말로 치부할 수는 없는 눈물겨운 투쟁이었다. 

필자는 조선시대에 자치통감이 중시되었다고 했거니와, 이 방대한 책을 통독한 사람조차 드물며, 그나마 읽었다는 통감은 주희가 팍팍 분량을 줄인 통감절요이며, 그나마 이 절요조차 제대로 읽은 사람이 드물다 했으니, 이는 실상 수학정석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 수학정석은 앞대가리 집합과 명제만 새까맣고 이후 미적분을 지나 마지막 확률과 통계는 깨끗함이 보통이었으니, 앞대가리만 주구장창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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