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이는 왜 생전에 셋째 이도한테 양위했을까?
방석이 때문이다.
방석이가 실패한 원인.
그를 전복한 자가 본인이기에 어찌해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았다.
성계가 실패한 이유는 골육의 정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석이를 제외한 모든 아들은 죽여버리거나 팔다리를 끊고 지방으로 위리안치했어야 한다.
이걸 본능으로 방원이는 알았다.
한데 이도는 이걸 몰랐다.
아들이 병약함을 알았으되 그 아들을 지나 바로 손자에게 갈 수밖에 없음을 알았을 것이로대
혈육에 이끌려 후사를 망치고 말았다.
권력은 부자라도 나누는 물건이 아니다.
태양은 하나다.
(2016. 2. 25)
***

이방원이 일찌감치 상왕으로 물러나 골방에 쳐박혀 있으면서도 일거수일투족 다 감시한 까닭은 대권을 일단 물려준 이도가 불안정하기 짝이 없던 까닭이었다.
상왕 이방원은 그런 상왕으로 너무 오래살아서도 안 되었고 너무 일찍 죽어서도 안 되었다.
적당한 시기에 죽어줘야 했다.
그때는 아들이 확실히 대권을 쥐었을 때이며, 그런 때 죽어줘야 했다.
대권을 여전히 틀어쥔 상왕은 그 존재만으로도 언제나 현왕의 위협이 된다.
이 점에서 실은 그가 죽은 시점은 절묘하기 짝이 없다.
그가 공식 대권을 넘기기는 1418년 8월 10일,
그로부터 대략 4년이 조금 차지 않은 1422년 5월 10일, 죽어준다.
세종 이도는 1397년 생이라, 맏형 양녕이 개차반 짓거리 일삼다 쫓겨나자 둘째형 효령까지 제끼고 일약 세자가 된다.
이도는 느닷없이 엎혀서 세자가 됐다.
다시 말해 그는 준비된 대권 후보자가 아니었다.
그가 세자로 책봉된 시점은 1418년 6월 3일.
세자가 된지 불과 두 달만에 느닷없이 나 왕 고마한데이 하고 나자빠진 아버지한테 떠밀려 왕이 된다.
이때 그의 나이 만 스물하나.
성년이라고 하지만 아직 젓비린 내 나는 푸성귀에 지나지 않았다.
이도는 두 달짜리 속성 대권 교육을 받고선 느닷없이 왕이 됐다.
이런 그가 얼마나 정권이 불안했겠는가?
그래서 이방원은 이도가 착근할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했고,
그래서 국방과 고위급 인사권만 틀어쥔다 했지만, 솔까, 이 두 가지가 전부지 뭐가 있겠는가?
이방원은 왕위를 넘겨줬다 해서 결코 곧바로 죽어줄 수 없었다.
죽어도 죽을 수 없었다.
적어도 몇 년은 더 버텨야 했다.
그대로 놔뒀다가는 이도가 방석이 꼴 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방원은 상왕이 되어 죽을 힘을 다해 죽지 않겠다 버텼다.
그렇게 4년이 흘러, 이젠 맥이 빠졌다.
지켜 보니 저 정도면 이제 내가 눈을 감아도 문제 없겠다 싶을 때 그때 죽어줬다.
아버지는 제때 죽어줘야 한다.
물론 쥐뿔도 없는 아비는 더 일찍 죽어줘야 한다.
(2025. 2. 25 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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