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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추석 연휴의 동반자 《어림語林》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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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짐 부담이라, 부피 무게 작은 문고본 중에 그 어느 쪽도 부담이 없는 이 친구를 골라잡는다. 더구나 짤막짤막한 인물 일화 모음집이라 순서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으니 이 얼마나 깐쫑한가?

동진東晋 시대 행적이 분명찮은 배계裴啓라는 이가 엮은 지인志人 필기筆記로 분류할 만 하거니와 전 10권이라 하지만 발간 직후 베스트셀러였지만 이내 곤두박질하면서 독서시장에서 퇴출, 망실되는 비운을 맞았다.

《어림》의 이런 운명은 《세설신어》에 잘 남았거니와 배계가 수록한 당대 정계와 산림을 거물 사안謝安 관련 일화를 다름 아닌 사안 자신이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떼는 바람에 한장 오르던 주가가 곤두박질쳐서 마침내 지성계에서는 거짓을 담은 책이라 해서 쫓겨나고 말았단다.




이에 말미암아 기어이 책 자체가 아예 종적을 감추고 말았으니, 하지만 역설로 《어림》은 여전히 열혈독자가 있었던 듯, 아니면 왕실도서관에 납본형태로 남아있었는지 적어도 일정기간 그 온전한 책을 본 사람이 없지는 않은 듯하다.

망실 시점은 語林十卷, 東晉處士裵啓撰, 亡, 어림 열권은 동진시대 벼슬하지 않은 선비 배계 저술이지만 망실됐다 라는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 기술로 미뤄 수나라 이전에 이미 온전한 판본은 사라졌음을 추찰한다.

일서佚書가 살아남는 방법의 전형이 피인용이라, 숙주에 기생하는 형태라, 이곳저곳 인용된 구절이 없지 않아 후대에는 각 일서별로 다른 책에 인용된 이런 구절들을 찾아서 따로 모으는 일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으니 현재도 중국에선 이 작업이 활발하다. 우리가 소설가로 아는 노신魯迅은 실은 이 집일集佚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니 소설가답게 주로 소설 성격이 짙은 육조시대 일서들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작업을 했으니 그 금자탑이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沉》이다.




이런 집일은 요새야 검색기를 장착함으로써 키워드 하나로 구충제 먹고 쏟아지는 기생충마냥 좍좍 관련 항목이 쏟아지는 시대지만, 그땐 오로지 수작업 카드로 하던 시절 아닌가?

저 방대한 작업을 하려면 무엇보다 참고문헌이 산더미 같아야 한다. 공공도서관을 끼지 않으면 힘들다. 또 혼자서 한다? 시다들 잘 만나고 주변 사람 도움도 절실하다.

내가 이런 일 한다는 소문이 나면, 그와 관련한 자료들을 이 친구들이 바리바리 싸온다. 내가 이걸 발견했는데 혹 자네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 보내네 뭐 이런 식이다.

요새 굳이 비유하자면 김태식과 기호철의 관계랄까 암튼 그렇다.




본론으로 돌아가 어림語林이란 말의 숲이다. 선진先秦이래 한漢·위魏· 양진兩晋에 이르는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언행이든가 사건을 짤막하게 정리하고 모았으니, 특히 그 직후 유송劉宋시대에 출현하는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세설신어라는 말 자체가 신어新語 아닌가? 곧 이는 신어림新語林이란 뜻이다.

《어림》이 시장에서 퇴출된 건 사안 사건보다는 나는 이 《세설신어》가 직접 원인이라 본다. 특히 유송시대 유의경劉義慶 원본을 소량蕭梁시대 유효표劉孝標가 풍부한 주석본을 발간하는데 이것이 결정타였다.

이는 견주건대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와 배송지裴松之가 注한《삼국지》와 같다. 엄밀히 말해 진수의 《삼국지》는 망실됐다. 배송지가 주석한 《삼국지주三國志注》에 겨우 빌붙어 살아남았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유효표가 작업한《세설신어주世說新語》도 원본을 망실케 할 정도로 가히 절대의 영향을 끼쳤다. 문제는 유효표가 《세설신어》를 주석하면서 《어림》을 거의 다 집어넣어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앙코가 될 만한 것은 모조리 인용했다. 것도 전문全文을.




이러니 후대엔《어림》을 따로 찾아볼 필요가 없어졌다. 《세설》에 다 있는데 뭣하러 수고롭게 이중노동을 한단 말인가?

이는 역설로는 사라진《어림》이 재탄생하는 발판이기도 하다. 《세설》을 필두로 후대 이런저런 글에 인용된 일화가 물경 170개 내지 180개를 헤아리는데 이쯤이면 얼추 다 복원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배계는 원통함이 좀 풀렸을까?

이걸 연세대 중문과 김장환이 역주하고는 지만지 시리즈 하나로 냈으니, 이게 그로선 좀 쉬웠던 이유가 그 전에 그 방대한《세설신어주》를 완역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어림》 번역은 쉬웠다는 뜻이다. 왜? 그 번역 초고 상당 부문이 이미 이뤄진 상황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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