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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땅 보령保寧 남포읍성藍浦邑城 진서루鎭西樓다. 진서루란 서쪽을 진압하는 누대란 뜻이니 읍성 전체 구역 중에서도 서쪽에 치우친 곳에 있음을 알겠다.
이곳이 조선시대 남포현 일대를 관장하는 지방관부 현청縣廳이 있던 자리다. 하필 왜 서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선택에 무슨 이유가 없지는 않았으리라. 다만 서쪽이라 했지만, 실제 서쪽으로 치우친 지점임은 분명하나, 정확히는 서북쪽 끝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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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층 누대를지나면 동서편으로 길게 난 담장과 그를 따라 중앙지점에 위치하는 3단 대문형 건물채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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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가운데로 대문이 나 있고 그 위로 간판 하나 걸렸으니 이르기를 옥산아문玉山衙門이라 하거니와 그 양옆 부속 건물채는 아마도 이 대문을 지나는 사람들을 옥죄는 경비원들이 있지 않았겠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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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玉山은 지명일 것이요, 아문衙門은 관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니 이 남포읍성에서 다스리던 곳을 한때는 옥산이라고도 부르지 않았느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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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루와 옥산아문 사이엔 넓은 마당이 있어 이곳에서 혹 말 안듣는 백성들 잡아다가 주리를 틀기도 하고
혹은 더러 목을 치기도 했는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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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당 오른편으로 돌비석들이 나란히 열을 이루어 이짝을 보거니와 읽으니 모조리 선정비善政碑 혹은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라
한놈 두시기 석섬 너구리 하며 차례로 세어보니 모두 8기요
그에 새길 글은 읽어보니 모조리 역대 남포현감藍浦顯監을 역임한 자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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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중 하나 붙잡고 더듬으니 顯監白公東奎善政(永世不忘)碑 라, 현감을 지낸 성은 백씨요 이름은 규동인 사람이 좋은 정치를 베푼 일을 영원토록 잊지않고자 세운 기념비라는 뜻이라
백동규白東奎라는 이로 남포현감을 역임한 이를 적출하면 저 기념비가 어느 시대 어느 무렵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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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선정비들을 현 관아에 이런 식으로 하나씩 세워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배치는 현대 문화재 관리 당국의 소치 아닌가 하는데
그 훼멸을 조금은 방지하고, 흐트러진 것들을 모아놓으면 좋다 해서 이러 하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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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친구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려했는지 건립연도를 표시했으니
오른쪽 顯監申候鳳圭善政碑[현감 신봉규 선정비, 公에 해당하는 부분에 侯후 라는 글자를 쓰기도 하거니와, 저에 새긴 글자 모양으로 볼 적에는 候다. 두 글자는 흔히 혼용했다.]는 정유丁酉 5월에 세웠다고 하고 왼편 顯監成侯達榮永世不忘碑[현감 성달영 영세불망비]는 도광道光 6년 7월에 세웠다 했으니, 연표 찾아보니 도광 6년은 조선으로서는 순조純祖 26년이라, 곧 1826년이다.
이런 선정비 영세불망비가 조선후기에 접어들며 유행처럼 자리잡으니 어느듯 실상과는 관계없이 퇴임엔 으레 따르는 데코레이션이 되어버리니
그리하여 퇴임에 즈음해 저런 기념물을 세우지 않음이 이상한 시대였으니, 그것이 지역사회 백성들한테는 또 하나의 고역이었으니, 저 일을 누가 했겠으며, 저 돌맹이 하나 만들어 세우는 데 얼마만한 돈이 들어가고 부대행사 비용이 소요됐을 것임을 생각하면 간단치는 않은 문제로 대두한다.
하긴 갑오운동을 촉발한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도 저런 선정비가 고부에 섰더랬다.
선정이 데코레이션이 된 시대. 칭송과 아부가 자동 어플인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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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아문 처마를 올려보다 얼굴에 뭔가 걸치는 기분.
쏴 하는 기분 일어 손 살포시 들어 더듬으니 거미줄이라 살피니 주인장 간데 없으니 아마도 이 폭우에 잠시 기왓장 밑 어딘가로 피신하며 집이 무사하길 빌고 있는지 모르겠더라.
폭우 피해는 적지는 아니한 듯해서 엃기고 짤렸으니, 이를 보면 재기불능이라 해서 딴 데로 옮긴 듯하거니와, 그럴려면 철거나 제대로 하고 가든지
봉황수鳳凰愁, 곧 봉황의 근심이었던가? 지훈 동탁이 저런 거미줄 칭칭한 궁궐을 보고서는 멸망한 왕조를 읽은 시가 있다 했거니와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다 산새도 비들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는가 하면 큰 나라 섬기던 옥좌玉座엔 거미줄 친 모습을 보고는 내가 몸 둘 데가 없어 한없이 울었다는데
돌이키니 그가 그리 읊은 때는 갓 스무살 시절이라 그는 애늙은이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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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거이줄에 멈칫해서리오
대문 들어서기 전 잠깐 뒤돌인 내가 겉은 뒤를 돌인보는데 저만치 진서루 물비 잔뜩 머금곤 처연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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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아문 들어서니 건물채 하나 덩그러니 이 넓은 마당 차지했을 다른 건물들은 모조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오직 저짝 뒤편 한가운데 길게 가로 누운 채 그 뒤편 성벽 너머로 저 용마루 따라 같이 굼뱅이마냥 드러누운 산 지맥이 병풍처럼 막아섰으니
그래 아이돌이요 저 산은 백댄서들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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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건축가가 저런 자연경관을 꼭 염두에 두고선 이 건물 설계 시공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리 보니 제법 어울리는 모양새가 나긴 한다.
그 앞엔 몇 살이냐 묻고 싶었지만 요샌 이랬다간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라, 대략 백년 안짝 될 성 싶한 은행나무 한 그루 시퍼럼을 뽑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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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로 품격은 있다하겠지만, 살피면 먼지 수북하고 진흙과 나무가 습기에 썩어문드러지며 내는 그 특유한 케케함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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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안 돌아서니 잡초 무성이라, 이 역시 한두달이면 시들고 말 터이니, 제법 나잇살 먹음직한 측백 두 그루와 느티나무 노거수 세트를 이룬다. 이런 측면을 언제 누가 심었는지 모르나, 주로 무덤에나 쓰는 나무를, 것도 뒤안에다 심었으니, 그 의도를 내가 알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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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포읍성은 근자 발굴과 정비가 없진 않았지만 현재 충청남도기념물이요, 국가지정 문화재가 아닌 까닭인지는 몰라도 손을 덜댄 까닭에 그래도 옛 풍모 많이 간직한 읍성이라는 점에서 정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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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지 마라.
남포읍성 경관 압권은 노송 몇 그루다.
어찌하다 나는 이곳을 지난 겨울에 찿았다가 또 찾으니 올해만 거푸 두 번을 갔다.
그날은 아주 쌀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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