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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하늘과 땅, 밀가루 시티로 하나가 되고

by taeshik.kim 2019.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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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61)


서쪽으로 돌아가며 열두 수[西歸絕句十二首] 중 11번째


[唐] 원진(元稹, 779~831) / 김영문 選譯評 



눈덮힌 종묘



구름은 남교 덮고

눈은 내에 가득 내려


순식간에 푸른 산과

한 몸이 되는구나


바람은 밀가루 휘몰아

하늘과 합치는데


얼음이 꽃가지 눌러

물밑까지 닿게 하네


雲覆藍橋雪滿溪, 須臾便與碧峰齊. 風回麵市連天合, 凍壓花枝着水低. 





이해하지 못할 구절은 없다. 다만 두 가지 어휘를 먼저 알고 나면 감상을 좀 더 깊게 할 수 있다. 먼저 첫째 구 ‘남교(藍橋)’다. 뜻을 그대로 풀면 남색 다리다. 중국어로 남색 즉 ‘란써(藍色)’는 하늘색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그런 색깔도 포함하고 있지만 그보다 앞선 의미는 남전(藍田)에 있던 다리 이름이다. 


남전은 중국 장안(長安) 남동쪽에 있는 지명으로 유명한 옥 생산지다. 남전 바로 서쪽에 유명한 종남산(終南山)이 있다. 장안 남쪽에서 동서로 길게 이어진 진령(秦嶺)산맥 발치다. 장안에서는 진령산맥 북쪽 기슭이 바라보이므로 늘 그곳은 어슴푸레하고 푸르스름한 비경으로 인식된다. 이런 연유로 신선이 사는 곳으로 상상한다. 





당나라 배형(裴鉶)이 편집한 소설집 『전기(傳奇)』 「배항(裴航)」에도 배항이라는 선비가 남전으로 들어가는 남교 근처에서 선녀 운영(雲英)을 만나 신선이 되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말하자면 남교는 속계(俗界)와 선계(仙界)를 구분 짓는 다리인 셈이다. 


또 하나 알아두어야 할 어휘는 셋째 구 ‘면시(麵市)’다. ‘밀가루 시티(city)’라는 뜻이다. 눈 내리는 세상을 쉽고 생생하게 표현했다. 왜 먹방이 sns세계의 일급 콘텐츠이겠는가? 먹거리는 늘 싱싱하게 우리 생명욕을 자극한다. 우리 동요 「눈」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우리는 ‘떡가루 시티’로 인식했다. ‘밀가루 시티’와 막상막하다.


첫째 구에서는 눈이 내려 속계와 선계 구분이 사라졌다. 둘째 구에서는 푸른 냇물과 벽옥빛 봉우리가 모두 한 가지 하얀색으로 변했다. 물과 산이 하나가 된 게다. 셋째 구에서는 땅과 하늘이 모두 희뿌옇게 ‘밀가루 시티’로 변했다. 하늘과 땅이 하나다. 넷째 구에서는 심지어 꽃이 핀 가지까지 빙설로 덮였으며, 그 꽃가지는 빙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냇물 바닥까지 휘어져 늘어졌다. 꽃과 냇물이 하나가 되었다. 그 꽃은 초겨울까지 버틴 국화일 수도 있고, 늦겨울에 피어난 매화일 수도 있다. 아니면 메마른 가지에 핀 눈꽃 그 자체일까?





어떤 시문(詩文)이든 작가가 특정한 지향점을 가지면(풍격이든, 주제든, 아우라든) 전체 어휘가 그 지향점을 바라보게 된다. 이 시도 그렇다. ‘覆(복: 덮다)’, ‘滿(만: 가득 차다)’, ‘齊(제: 하나가 되다)’, ‘連(련: 이어지다)’, ‘合(합: 합쳐지다)’, ‘凍(동: 얼다)’, ‘着(착: 들러붙다)’ 등 모든 동사가 통합을 지향한다. 그 매개가 바로 하얀 눈이다. 


우리 동요 「눈꽃송이」도 비슷한 그림이다. “송이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나무에도 들판에도 동구밖에도/ 골고루 나부끼니 아름다워라” 하늘, 나무, 들판, 동구밖까지 아무 차별 없이 하얀 옥빛 꽃송이로 덮인 세상은 그야말로 화엄의 세계이며 대동세상이다. 


하지만 이 시는 차갑다. 천지가 얼어붙었다. 빙설에 덮여서 하나 된 이런 세상을 어떻게 견딜까? 영화 「겨울왕국」을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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