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후삼국시대의 "호족"이라는 것이 일본사에서 "지방의 반란과 무사의 성장"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
우리 역사를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 과연 전시과체제와 과전법체제라는 것이 한국사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한 시스템일까..말하자면 해체되어 가는 公田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자꾸 부활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역사상 일본에서 公田이 해체되어갈 때 한국도 비슷하게 해체되어 가는 흐름이었던 것 같은데 이것을 인위적으로 자꾸 가로막는 것이 전시과 체제와 과전법 체제 같아 보인다.
이런 흐름이 일본사에서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긴 할 것 같지만 우리는 이런 흐름이 시도에만 그친 게 아니라 실제로 인위적으로 公田을 재창출해 내고 사전과 이의 집적체인 장원을 억제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더라는 생각이다.
한국사에서의 公田회귀 본능 역사는 유구한데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주장하던 '개혁책'으로 여전제나 한전제 이런 것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본다면 전시과체제와 과전법체제 역시 일종의 公田회귀 본능의 발로로 이를 역사의 순리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쩌면 후삼국시대의 "호족"이 난립하던 시대는 무신정권과 직접 연결되어야 하는 성격의 시대 아니었을까. 후삼국시대--고려전기--무신정권이 아니라 실제로는 후삼국시대--무신정권으로 연결되는 성격의 시대가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전시과체제에 기반한 사이에 낀 고려전기는 역사의 순리가 아니라 오히려 반동의 시대가 되는 셈이겠다.
단순한 추정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틈만 나면 일어나는 公田부활의 근본 동력은 외부부터의 침략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한 번 몰려왔다 하면 수십 만이 외부로부터 쳐들어오니 이에 맞설 병력 유지를 위해서도 공전은 수시로 재창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외부 침략에 무력했다고 기억하는 조선시대 후기에도 국가예산의 절반은 5군영 유지에 사용되었다는 점을 기억해 둘 것.
한국과 일본의 公田의 역사. 아무래도 20세기 이전에 제대로 된 외침이라곤 딱 한 번 받아본 나라하고 틈만 나면 수십만이 쳐들어오는 나라하고 그 해체의 과정이 동일할순 없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2천년간 틈만 나면 부활한 공전회귀 본능이 지금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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