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 출현 이후 한국고대사학계, 특히 신라사학계에는 ‘화랑세기 트라우마’에 견줄 수 있는 현상이 있다고 했거니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가 용수龍樹-용춘龍春 문제다.
두 이름은 김춘추 계보를 논하면서 그 아버지로 등장하는 표기로,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는 이 두 표기를 딴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뜻밖에도 이 둘이 다른 사람으로 드러났다. 한데 이에 놀란 사람들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 두 표기가 등장하는 맥락을 다시 살피니, 정말로 딴 사람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이렇게 기록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집필진이 용수-용춘을 딴 사람으로 인식했느냐 하는 논란이 있다. 나는 적어도 삼국사기는 그랬다고 본다.
![](https://blog.kakaocdn.net/dn/zh0C4/btqQIalFHp8/UmxN6KvgICcdoIe8RR5u1K/img.png)
하지만 집필진이 그렇게 인식했건 아니했건, 이건 중요하지않다. 용수와 용춘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만 중요할 뿐이다.
주목할 점은 이렇게 드러난 과정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저록한 용수와 용춘은 다른 인물이었지만, 그 발견을 유도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화랑세기였다.
간단히 말해 화랑세기를 보고 나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관련 기록을 보니 두 이름은 딴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이에서 어떤 ‘화랑세기 강박’이 작동하는가?
등신이 아니고서는 이제는 용수 용춘이 같은 인물이라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명백한 사실을 자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갖은 억측과 억설을 갖다대면서 용수와 용춘이 같은 사람이라 한다.
나는 이를 화랑세기 트라우마로 규정한다.
이 문제를 인정하면 그 자리서 화랑세기 진본론자로 낙인 찍혀 학계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을 먹기 때문이다.
말하건대 용수와 용춘은 딴 사람이다. 이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폭로한 것이지 화랑세기가 그리한 것은 아니다.
(2016. 12. 19)
#화랑세기 #화랑세기논쟁 #화랑세기진위논쟁
*** 아래 첨부기사를 참조하면 도움이 더 될 것으로 본다 ***
용수龍壽-용춘龍春이 다른 사람인 빼도박도 못할 근거
용수龍壽-용춘龍春이 다른 사람인 빼도박도 못할 근거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즉위년 조에 김춘추 계보를 기술하면서 그의 아버지를 일러 "진지왕의 아들인 이찬伊飡 용춘龍春[혹은 용수龍樹라고도 한다.]"이라 했다. 용수는 누구이며 용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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