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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해방 이후 3년간의 미군정을 끝내고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를 치르고 동년 8월 15일 제 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48년 제헌국회 당시 미군정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한 "성공적 선거의 적"은 무엇이었을 것 같은가?
북한의 방해?
그것이 아니고 미군정은 남한에서 선거가 제대로 치러질지를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왜냐.
문맹률이 너무 높아서.
![](https://blog.kakaocdn.net/dn/cjXG4A/btr5R1086Kk/1UDAnxbHUuytlS1N14kooK/img.png)
해방 직후인 1946년에 좌우합작위원회에서 입법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었는데 문맹으로 4할이 기권이었다는 것이다.
일단 선거를 치른다고 해도 누가 누군지를 알아야 투표를 할 것 아니겠음?
![](https://blog.kakaocdn.net/dn/5LV5a/btr5Ul54aHR/aZ6cIKc9kzKkkwh7bLSuCk/img.jpg)
이 때문에 1948년까지 미군정은 초보적인 한글 교육을 미치듯이 시행했다.
이 시기의 문맹률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48년까지 집중적으로 나오는데, 사실 뭐 대단한 수준의 교육이 아니었을 것이고 보면, 아마 후보자 이름 더듬 더듬 읽는 정도로라도 가르치면 문맹이 아니라고 분류하지 않았을까 싶다.
![](https://blog.kakaocdn.net/dn/bi4Euo/btr5QzqtRB8/hkmKOlkyQzyOhe2NhWD19K/img.png)
![](https://blog.kakaocdn.net/dn/baeAUd/btr6eWxedsJ/7X3TZL0CFJlllUCBoF5GY1/img.jpg)
![](https://blog.kakaocdn.net/dn/cnK3lT/btr6ngaWDaP/xdLsixvMDBSwMjtEnbT4G0/im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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