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kakaocdn.net/dn/cL620A/btsMkYgDjgg/kCOmu4IyyKC1r9kTe5cvb0/img.png)
계속 인용하는 조선 중기 윤국형尹國馨(1543∼1611) 찬 갑진만록甲辰漫錄에 보이는 일화 한 토막이다.
조금 길지만, 내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는 위선 전문을 훑어야 한다.
한국고전번역원 번역 서비스를 조금 손질한다.
○ 임인년 한여름에 내가 황강黃崗으로 부모님을 뵈러 갔을 적에 성영成泳 영공令公이 북경北京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만나 이야기하던 중에 그가 말하기를,
“조정(명 나라 조정)에 있을 적에 새로 간행한 조선시선朝鮮詩選을 보았는데, 바로 오명제吳明濟가 편찬한 것이었소. 그 안에는 영공께서 오명제와 작별하며 지은 율시 한 수가 있었소.”
라고 했다.
가만 생각하니 내가 무술년 서울에 있을 때 어느 (명나라 파병) 장군 막하幕下인지는 모르나, 오명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문장에 능한 사람이었다.
내가 임시로 거처로 마련한 곳과 가까워서 때로 찾아오기를 서너 차례 했지만, 앞에 말한 이별하는 시는 내가 지을 수도 없었고 실제로 그런 일도 없었다.
그 책이 (명나라에 파견된 조선사신단 넘버3인) 서장관 조성립趙誠立 처소에 있다는 말을 듣고 구해 보려 하니, 짐보따리 속에 깊이 들어 있어 서울에 가면 보여 주겠다고 했다.
내가 서울에 돌아와 가져다 보니, 회감懷感이라는 제목 아래에 ‘어·오 참군께 드림[呈于魚吳參軍]’이라 했다.
시에 이르기를
삼베옷 온통 길 먼지에 날리고 / 麻衣偏拂路岐塵
수염 텁수룩하고 얼굴 늙어 아침 거울마다 다른 모습 / 鬢改顔衰曉鏡新
상국의 좋은 꽃은 근심 속에 아리땁고 / 上國好花愁裏艶
고향 꽃다운 나무 꿈속 봄이라 / 故園芳樹夢中春
편주는 안개 달속 바다에 뜨고자 하고 / 扁舟煙思浮海
필마는 관하에서 나루터 묻기에 지쳤네 / 匹馬關河倦問津
칠년 전쟁 이별 서러워하는데 / 七載干戈嘆離別
푸른 버들 꾀꼬리 소리 애를 태우네 / 綠楊鶯語太傷神
라고 했다.
내가 적이 이상히 여겨 친지들한테 물으니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는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는 것인데, 7년 간의 전쟁이란 말이 마침 오늘날의 사실과 비슷하므로, 오명제가 이것을 따 가지고 아무개가 그와 작별하는 시라 하여, 중국에 가서 과시하기 위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고 했다.
오명제의 허황됨이 이와 같으니, 그와 잠시나마 만나서 그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이 매우 한탄스럽다.
이른바 조선시선이라는 것은 시만 뽑아 놓았을 뿐 아니라, 그 권수卷首 목록에는 우리 동국의 역대 역성易姓의 시말을 기록했는데
최치원崔致遠 이하 오늘에 이르기까지 재상·조사朝士·규수閨秀·승가僧家 등 백여 명 성명을 나열하고 그들의 출처出處 등을 소상히 밝혔거니와,
이는 길에 떠도는 말을 들어서 쓴 것이 아니고 필시 사실을 아는 문인文人이 지도한 것일 테지만, 정확하게 누구 손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 이름 아래에는 벼슬이 형조 참판에 이르고, 지금은 연로하여 한강漢江에 물러가 있다 하고, 끝에 “임인년1602(선조 35) 봄 정월 초하루에 속보續補했다”고 했다.
그가 말한 한강이라 한 것은 필시 내가 그때 서강西江에 살고 있던 일을 가리킨 것인데, 신축년 10월 27일의 일이니, 이날부터 임인년 정월 초하루까지는 겨우 63~64일밖에 안 된다.
오명제가 중국에 있으면서 내 거취를 어쩌면 그리도 이처럼 빨리 듣고 있단 말인가.
기해년1599(선조 32) 철병 이후로는 중국인이 나오지 않았고, 비록 북경에 간 역관譯官이 있기는 했지만 내 거취와 같은 아주 작은 일에 대해서 어찌 서둘러 저쪽에 전한 것인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으니, 정말 괴이한 일이다.
'역사문화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수설을 돈독히 믿은 한산이씨, 그리고 그 사위 한음 이덕형 (2) | 2025.02.16 |
---|---|
조선시대 육조 중 주지육림 꽃보직은 예조 (0) | 2025.02.16 |
신이 된 소들 (0) | 2025.02.16 |
무덤 속 탈것은 모두가 상여! 트라키아 전차의 경우 (0) | 2025.02.15 |
조선에 비로소 상업을 부른 전쟁, 임진왜란의 경우 (0) | 2025.02.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