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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4천 년 전 영국의 집단학살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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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테크+] "英 청동기 유골 수십구에 끔찍한 도륙 흔적…학살·식인 추정"

송고시간 2024-12-16 09:01  


英 연구팀 "청동기 37명 유골 분석 결과…식인 행위, 비인간화 수단인 듯"

 

이런 소식은 우리 블로그도 여러 번 전했으니, 청동기시대 전쟁 흔적은 이제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주로 인골을 분석해 그에서 인공이 가한 타격 흔적을 찾아서 저런 결론을 도출하는 전통적인 고인류학 연구 방식이라

간단하다. 

 

 

뼈를 분석했더니 곳곳에서 무기룰 맞은 흔적이 나왔다. 곧 전투 중에 죽었다, 딱 이거다. 

그 앱스트랙은 다음과 같다. 

Direct physical evidence for violent interpersonal conflict is seen only sporadically in the archaeological record for prehistoric Britain. Human remains from Charterhouse Warren, south-west England, therefore present a unique opportunity for the study of mass violence in the Early Bronze Age. At least 37 men, women and children were killed and butchered, their disarticulated remains thrown into a 15m-deep natural shaft in what is, most plausibly, interpreted as a single event. The authors examine the physical remains and debate the societal tensions that could motivate a level and scale of violence that is unprecedented in British prehistory. 

 

 

 

폭력적인 사람간 갈등을 직접 증언하는 흔적은 선사시대 영국 고고학에서 산발로만 볼 수 있다.

따라서 영국 남서부 서머셋Somerset 주 차터하우스 워런Charterhouse Warren에서 발굴된 인간 유해들은 초기 청동기 시대 대규모 폭력을 연구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한다.

남성, 여성, 어린이 최소 37명이 살해되고 도살되었으며, 그들의 해체된 시신은 15m 깊이 자연 구덩이에 던져졌는데, 이는 가장 그럴 듯하게 단일 사건으로 해석되었다.

저자들은 유물을 조사하고 영국 선사시대에 유례가 없는 폭력의 수준과 규모를 유발할 수 있는 사회적 긴장에 대해 토론한다. 

 

 

실상 연구자들은 저리 보고했지만, 저와 같은 고고학적 증거는 생각보다 아주 많다. 

저들은 인골 집단 매장이 단일한 사건에서 이뤄졌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야 의미가 좀 더 커진다. 실제 발굴 향상을 보면 최소 37명이 되는 사람들은 집단학살당했다. 

저런 학살이 초기 청동기시대에 있었다고 본다. 이는 같이 출토된 유물 분석이라든가, 인골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 등을 통해 범위를 좁힌다. 

저쪽 청동기시대는 개막이 엄청 빠르고 말 그대로 저쪽은 진짜 청동기시대라, 빠른 데서는 기원전 3천년 경 무렵에 이미 순동을 쓰기 시작하며, 최근에는 더 빨라져서 불가리아 쪽을 보면 기원전 4천년 전에 이미 구리를 제련하고 금을 제련한 흔적까지 나왔다. 

 

 

암튼 저 유적 인골들은 이미 1970년대에 발굴됐다. 이들 뼈는 절단과 탈구 흔적이 많고 긴 뼈에서는 주변 골절이 드러나고 두개골에는 둔기에 맞아 생긴 상처가 많아 유명하다.

영국 선사시대 구분을 보면 청동기시대 이전에 칼콜리트Chalcolithic 시대(기원전 2450-2200년경)를 설정하고 그에 이은 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2200-1600/1500년경)로 이행한 것으로 본다.

앞서 스톤헨지 해자에서 발견된 젊은 남성 인골에서는 돌화살에 맞은 흔적이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웨스트 서섹스 West Sussex의 락턴Racton에서 성인 남성이 금속 날 무기, 아마도 청동단검을 맞은 흔적이 드러났다. 

다만 이번 건은 집단학살이라는 점에 의미 부여를 한다. 단발성이 아니라 떼거리로 죽였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마을 하나를 아작 낸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성과 어린이 유해까지 발견될 리는 없을 테니깐 말이다. 

이 무렵 독일인가로 기억하는데, 거기서는 아예 대규모 전쟁 흔적이 드러나기도 했다. 기원전 수천년 전에 대규모 전쟁? 이해가 되기나 하는가?

세계 고고학이 이렇게 흐르고 있다. 

한국청동기시대는 이런 연구 혹은 접근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물론 인골 확보가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 자체가 아예 부재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들이라고 전쟁을 안했으며 살인을 안 했을 것 같은가?

그 무수한 돌무기가 무엇을 말해주겠는가?

한가한 도토리 놀음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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