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전체에 대한 영어번역은 아래 참조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3Atext%3A1999.02.0026
http://mcadams.posc.mu.edu/txt/ah/Livy/
그의 초기 생애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출신 가문도 알 수가 없다.
고향 파타비움은 부유한 도시로 엄격한 도덕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스어를 배우려 했지만, 삼두정치에 따른 내전과 기원전 44년 줄리어스 시저 암살 등으로 초래한 불안정한 사태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간주된다.
그의 그리스 번역에서는 오류가 심심찮게 발견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수사학과 철학을 배우고 철학 대화록도 썼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일실하고 말았다.
젊은 시절 경력은 알 수가 없다.
그의 가문은 다 불확실하지만 대단하지는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이름이 로마에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훗날 아우구스투스 황제로 일컫는 옥타비아누스가 기원전 31년 악티움(Actium) 해전에서 승리하고 차츰 정국이 안정되고 나서다.
그의 저술을 통해 그가 기원전 29년 혹은 그 직전 로마사 저술을 계획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그가 로마로 주거를 옮겼으니 관련 자료 습득을 위해서였다.
그리스인 Dionysius of Halicarnassus도 같은 목적을 위해 기원전 30년 로마에 정착했다.
이후 생애 대부분을 리비우스가 로마에서 보낸 것은 분명하다.
로마생활 초창기에는 아우구스투스 요청으로 훗날 황제가 되는 어린 Claudius의 선생 역할을 했으니, 이때가 아마도 서기 8년 무렵이었던 듯하다.
당시 로마에는 시인들인 Horace, Virgil, Ovid, 그리고 이들을 후원한 Maecenas와 활동했지만 리비우스가 그들과 밀접한 관계는 아니었던 듯하니, 저들의 글 어디에서도 그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기록 중에 아우구스투스가 그를 ‘폼페이 사람(Pompeian’이라 불렀다는데, 이는 그의 솔직하면서 독립적인 성격을 암시한다.
그의 필생 일은 로마사 저술이었다.
그의 《로마사》는 라틴어 원제가 'Ab urbe condita libri'이니, 글자 그대로는 "from the founding of the City (of Rome)"라는 뜻이다.
리비우스는 이를 5권씩 출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때 권이란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작업이 복잡해지자 이런 순차적 출간 패턴을 버리고는 총 142권을 완성했으니. 개중 11~20권과 46~142권은 망실됐다.
근자에 시작한 국내 완역본(아래 소개)에 붙인 로마사 전공자 김덕수에 의하면 "두루마리 1개에 담긴 분량은 오늘날 단행본의 63쪽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리비우스 로마사 142권은 오늘날 책으로 환산하면 9230쪽 정도이고 단행본 한 권을 평균 300쪽이라고 가정하면 약 31권에 해당하는 분량이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덕수는 리비우스가 이 책을 거의 43년 동안 썼으니, 산술적으로 보면 1년에 215쪽, 3.3개 두루마리 책을 쓴 셈이라고 본다고 한다.(아래책 9쪽)
권별 구성은 다음과 같다.
1~5 로마 건설 이후 갈리아인들(the Gauls)에 의한 로마 약탈(기원전 386)
6~10 The Samnite wars
11~15 이탈리아 정복
16~20 제1차 카르타고 전쟁
21~30 제2차 카르타고 전쟁(기원전 201년까지)
31~45 Perseus와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들(기원전 167까지)
46~70 내전 때까지 일들(기원전 91년까지)
71~80 Marius 사망 때까지 내전(기원전 86년까지)
81~90 Sulla의 죽음(기원전 78)까지 내전
91~103 Pompey의 승리(62 BC)까지
104~108 공화국의 마지막 시대
109~116 시저 암살(기원전 44)까지 내전
117~133 시저의 죽음에서 악티움 해전까지
134~142 기원전 29~기원전 9년까지
망실된 권들도 일부는 다른 사람들이 인용한 형태로 찔끔 전하기도 하며, 120권이 다룬 웅변가이자 정치가인 Cicero 죽음에 대한 내용도 파편 형태로 전한다.
45권 이후 나머지 권들은 줄거리만 남았다.
이들 권은 서기 1세기에 접어들면서 계속 쓰였으니, 그 까닭은 전체 분량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연설문집과 요약집도 있었으니, 개중 2건 일부분이 남아 있으며, 37~40권과 48~55권 요약을 포함하는 서기 3세기 이집트산 파피루스와 Periochae로 알려진 4세기 무렵 책 전체 요약분도 있다.
121권 Periochae에 남은 주석으로 볼 때 아마도 그 이후 권들은 서기 14년 아우구스투스 사망 이후 발간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악티움 해전 이후 기원전 9년까지 다루는 마지막 20권이 애초 리비우스가 생각한 책 체제에서 나중에 추가된 것이며, 아울러 아우구스투스 생전에는 출판이 정치적으로 출판이 힘들었음을 암시한다.
구상은 원대했고 실제 작업도 방대하니 1년에 평균 3권씩 쓴 셈이다.
정치가 小Pliny한테 보낸 그의 편지를 보면 이 일을 포기하고 싶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일이라 그리 할 수 없다는 말이 보인다.
나아가 이 편지에는 Cádiz 한 시민이 오로지 그를 만나고 싶다며 냅다 로마로 달려온 일도 있다고 말한다.
<Roman expansion in Italy..from https://en.wikipedia.org/wiki/Roman_expansion_in_Italy>
그 창립에서 현재에 이르는 로마사를 쓴다는 계획이 그가 처음은 아니었다. 이런 일은 로마의 첫 역사가로 평가되는 Quintus Fabius Pictor 이래 로마에서 200년간 유행했다.
그의 로마사 저술은 두 가지 동기를 지적할 수 있다.
호사가적 취미와 더불어 정치적 동기가 그것이다.
특히 기원전 100년 이후 고대 의식과 가문 족보, 종교 전통 등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이 일었다.
이런 관심에서 많은 전문 저작이 나왔으니, Cicero의 친구이자 correspondent인 Titus Pomponius Atticus는 트로이족에 대한 연대기를 썼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에트루리아 종교(Etruscan religion)를 광범위하게 수집했다.
그의 시대 위대한 학자인 Marcus Terentius Varro는 백과사전인 Divine and Human Antiquities를 출판했다.
이전 역사가들은 대중적 인물이었고, 국가 업무랑 연관이 있었다. Fabius Pictor는 praetor였으며, 大Cato는 consul이자 censor였고, Sallust는 praetor였다.
더불어 Sulla라든가 Caesar는 권력자로서 한가한 시간에 역사를 썼다. 어떤 이들에게 역사 저술은 정치적인 합리화 도구이기도 했으니 Caesar의 갈리아 정복기가 이에 해당한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역사는 교양 오락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의 전망과 배경을 포함한다.
역사는 현재를 설명하거나 변명하는 정치적 학문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리비우스는 정치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역사가라는 점이 이채롭다.
이는 그의 역사저술에서는 약점이기도 했으니, 로마 정부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그 시스템을 알지 못했으며, 이런 무지가 그의 저술에서도 때론 드러난다.
나아가 힘이 없었기에 정부 소장 각종 자료를 열람할 수 없었다.
이상 설명은 다음을 참조해 대폭 축약한 것이다.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Livy
로마사 서문에서 리비우스는 고대사를 쓰는 이류를 "나는 고대시대가 보람을 안겨주는 연구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고대에 물두하고 있는 동안에는 오늘날의 세계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여러 난제들로부터 잠시 시선을 돌릴 수 있고, 또 현대 생활을 다루는 작가에게 엄습하는 불안감-물론 이런 불안감으로 인해 역사가가 진실을 은폐하는 일은 없다-을 느끼지 않으면서 글을 써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아래책 16쪽)고 썼다.
나아가 리비우스는 "나는 독자들이 우리의 조상이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으며, 로마의 권력이 처음 획득되어 그 후 계속 확장되어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정치와 전쟁의 수단을 사용했는지 등을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해 보기를 촉구한다. 그런 다음 우리나라의 도덕적 쇠퇴의 과정을 살펴보기를 권한다"(16쪽)고 하면서
"역사의 연구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약이다. 왜냐하면 역사서는 모든 사람이 뚜렷이 볼 수 있는 무한히 다양한 인간 경험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록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나라를 위한 모범적 사례와 경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좋은 일들은 모범으로 삼고, 철저히 부패한 지저분한 일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피해야 할 것이다"(17쪽)고 해서
동시대 동아시아 역사학이 그런 것처럼 철저한 역사 감계주의 전통에 섰음을 본다. 요컨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자는 역사학이다.
그의 로마에 대한 찬사는 신앙에 가까웠던지 "우리나라보다 더 위대하거나 순수한 나라는 없다고 생각하며 또 훌륭한 시민들과 고상한 업적의 관섬으로 볼 대 우리나라를 따라올 나라는 없다고 진심으로 믿는다"(17쪽)이라고 말한다.
리비우스 《로마사History of Rome》는 국내 번역이 없다가 최근에야 선보이기 시작했으니 이종인이 옮기고 도서출판 현대지성에서 이번 달에 첫 권으로 나온 《리비우스 로마사》가 그것이다.
이 첫 권은 제1권 이래 제5권까지에 해당한다.
출판사 예고를 보면 이 번역은 전 4권으로 번역될 모양이다. 추천글을 로마사 정통 전공자로 현재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이면서 역사학회장인 김덕수가 썼다.
역자는 전력을 보니 1954년 서울 태생으로,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영어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보니 영어본을 옮겼다.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종인은 그 자신을 소개하기를 "전문번역가로 활동한 이래 지금까지 140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500권을 목표로 열심히 번역하고 있다"고 했으니, 그 기개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이 번역본을 토대로 향후 이 분야 직업적 학문종사자에 의한 좀 더 완벽한 라틴어 원전 번역이 나왔으면 싶다.
594쪽, 2만2천원.
국가전자도서관 검색 결과는 아래와 같다.
http://www.dlibrary.go.kr/JavaClient/jsp/ndli/Search/rda_52.jsp?menu=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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