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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육주6

[강동육주를 심판한다] (4) 증여와 쟁취 사이, 그를 둘러싼 논쟁 이른바 강동6주는 그 용어가 탁상에서 안출한 용어이기는 해도 10~11세기 고려-거란 관계를 설명하는 데 여러 모로 요긴하다는 이야기는 했거니와, 저 용어를 만들어낸 개념이 거란 전사인 요사遼史와 고려사 모두 등장한다는 사실도 이미 지적했거니와, 이를 위해 바로 앞에서 우리는 6주六州라는 이름으로 요사에 등장하는 맥락들을 살핀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같은 고려 측 문헌(실상 정리는 조선초지만)을 본다. 기전체인 전자보다는 편년체인 절요가 여러 모로 이 경우 요긴해 이 절요를 통해 그에 해당하는 고려 측 표현인 육성六城이 등장하는 맥락을 등장 순서대로 살핀다. 먼저 현종 3년, 1012년 6월에 이르기를 형부시랑刑部侍郞 전공지田拱之를 거란에 보내어 여름철 문후를 올리고 또한 왕이 병에 .. 2024. 2. 12.
[강동육주를 심판한다] (3) 요사遼史가 말하는 육주六州 우리는 앞서 거란 측 기록에는 한결같이 육주六州라고 등장하는 실체가 고려사에는 한결같이 육성六城이라는 말로 대치한다 지적했고 둘 중에서도 후자가 사실에 부합함도 보았다. 따라서 강동6주江東六州라는 말은 있을 수 없으며 그 토대가 된 육주라는 말도 순전히 거란 측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 이 말은 이런 검토도 없이 근현대 역사학이 무책임하게 주물한 거란 중심주의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이 나로서는 수상쩍기 짝이 없어 한국 근현대 역사학은 22사 혹은 24사 중에서는 유독 요사를 개취급 걸레취급함에도 어찌하여 이 문제만큼은 요사를 취해서 저런 용어를 고수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요사를 믿는다면 왜 그 지리지는 버리는가? 웃기지 아니한가? 그 지리지를 취하면 위만조선이건 그 땅에 설치됐다는.. 2024. 2. 10.
[강동육주를 심판한다] (2) 육주六州 vs. 육성六城 강동육주江東六州라 하지만, 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아니하며 현대 역사학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다만, 그 용어가 아주 쓰임이 없지는 아니해서 그런 대로 10~11세기 고려 거란 관계를 설명할 때 요긴하기는 하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도 툭하면 강동6주라는 대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강동이라는 말 자체가 거란 주체 시각임을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고려가 宋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거란에 신속臣屬하는 반대급부로 개척한 이른바 강동육주는 협상 성립과 더불어 곧바로 고려에 관할이 넘어온 것도 아니요, 거란의 묵인 아래 고려 왕조가 직접 군사를 발동해 순차로 개척했다는 사실도 앞서 보았다. 그 전방 개척 사령관이 다름 아닌 서희였다. 더구나 그렇게 해서 그 땅에 쌓은 전초기지가 6군데도 아니요 사서.. 2024. 2. 7.
서희, 여든 할아버지가 으랏차차 해서 얻은 아들의 아들 파블로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에 태어나 1973년 4월 8일에 죽었다. 백수가 흔치 않게 된 요즘이야 대수롭지 않겠지만 당시 의료 사정을 고려할 때 92년 성상이라는 기록적인 장수를 누렸다. 더 큰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정력이 더욱 용솟음쳤다는 사실. 끊임없이 여자를 바꿔제낀 그의 마지막 자식은 팔로마 피카소로 알고 있는데 1949년생이라, 68세에 낳은 딸이다. 피카소보다 대략 천살 많은 서신일徐神逸이라는 사람은 피카소를 무색케 한다. 친구들은 다 송장이 된 여든살에 으랏차차 해서 아들을 낳았고, 더구나 그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과 다시 그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모조리 재상을 지냈으니 이렇게 후손 복이 많은 사람 있을까 싶다. 그의 아들이 내의령內議令까지 지낸 서필徐弼이요, 서필의 아들이 이.. 2024. 2. 7.
[강동육주를 심판한다] (1) 거란 중심주의 시각 고려거란전쟁에서 이른바 강동육주江東六州가 언제나 매개 변수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지적했거니와, 하지만 이 강동6주라는 말은 근대 역사학이 만들어낸 데 지나지 아니하고, 무엇보다 고려 측 기록, 곧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보아도 州는 가당치도 않고, 변방 군사 요새 지역이라는 의미가 강했으니, 그보다는 성城이라는 개념으로 치환해 이해하는 편이 옳다. 더구나 내용을 뜯어보면 6주가 아니라, 거란에서 할양받은(엄밀히는 거란 묵인 하에 고려가 여진을 정벌하고 얻은) 땅에다가 8개 성을 설치한 것으로 문헌에는 보인다. 앞서 나도 지적했듯이 이 강동육주라는 말이 여러 모로 당시 두 나라 사이 국제관계를 설명하는데 편리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 해서 편리하다 해서 퉁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근대 역사.. 2024. 2. 1.
강동6주? 서희가 강제로 탈취했지 거져 얻은 것이 아니다 저 강동육주江東六州라는 말은 전통시대 사서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못내 옛날부터 미심쩍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 대로 저 시대 역사를 설명할 때는 편리한 점이 많아 그대로 따르기는 했지마는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우리한테 각인한 이미지는 서희라는 세 치 혀로 무장한 뛰어난 고려시대 외교관이 80만 대군이라 설레발 친 거란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지어 그 자리서 저 땅을 받았다고 하지만 천만에. 당시 양쪽 조정을 대표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밀실 야합이 있었는지는 고려사(절요 포함)와 요사 모두 침묵하지만, 이후 전재된 양상으로 보건대 명확해서, 또 많은 이 시대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고려는 송과의 조공책봉 관계를 끊고 이제부터는 거란을 종주국으로 섬겨 요나라에서 조공 책봉을 받겠다. ..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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