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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7

산송, 빗금이라는 경계가 유발한 전쟁 산송山訟..글자 그대로는 산을 둘러싼 쟁송이지만 실제는 묘지를 둘러싼 경계의 다툼이자 이를 기반으로 삼는 소유권 다툼이다.조선후기에 하도 이런 산송이 빈발해 이 문제가 망국병이라는 진단 또한 적지 않다.산송이 왜 빈발하는가?이는 모호한 경계 때문이다.그렇다면 이는 원천에서 어떻게 없애는가?처방은 정확한 진단에서 나온다. 모든 문제는 개판인 경계에 있으므로 처방은 당연이 그 개판인 경계의 정확한 확정이다. 왜 개판인가? 그 경계가 선이 아니라 빗금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라인은 어떻게 긋는가?측량이다.토지조사사업이 한국사 전개에서 지닌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 경계의 확정이다.더 구체로 말하면 빗금을 쳐서 흐리멍덩한 경계에서 그 흐름을 단칼에 잘라 선으로 전환하는 일이다.빗금으로 표시된 프론티어를 철책선과 같.. 2025. 3. 11.
[건축론] (3) 금천禁川, 흔적기관으로 남은 해자 나는 앞선 글에서, 그리고 매양 무덤은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인 까닭에 그 근본 디자인 역시 같다는 말을 누누히 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우리가 착목하고자 하는 문제가 금천禁川과 금천교禁川橋다. 금천이란 무엇이며 금천교는 또 무엇인가? 간단히 정의하면 금천은 왕이 지배하는 절대 배타의 공간과 왕이 지방관을 통해 간접 통치하는 구역 경계 지점을 통과하는 물길이다. 금천교는 이 두 구역을 연결하는 통로요, 그것이 가로지르는 물길이 금천인 까닭에 그리 부른다. 다만 금천 혹은 금천교라는 이름은 다른 이름으로 얼마든 일컫을 수 있다.   살아서 사는 집 왕궁이 금천과 금천교가 있으니, 이걸 그대로 저승 세계로 가져간 왕릉 또한 당연히 금천과 금천교가 있다. 이런 금천은 대개 왕궁 남대문 인근을 통과한다. .. 2024. 8. 2.
측량, 빗금에서 라인으로 근대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이동이다. 측량은 선을 긋고 경계를 수치화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왜 유길준이 측량 학교를 세웠겠는가? 측량없이 선을 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에도 경계는 있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언제나 빗금이라 언제나 그 빗금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발생했다. 측량을 도입하고 그것을 실제로 적용한 곳이 토지조사사업과 산림조사사업이었다. 이 사업이 실시되고 그것이 적용됨으로써 조선왕조 500년을 옥죈 산송이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저 두 사업으로 조선총독부가 토지와 산림을 수탈했다는 신화가 자리잡았지만 실은 정반대였다. 토지 산림 수탈은 금을 긋지 않은 상태에서 빗금으로만 존재하던 구역에서 늘 발생한다. 수탈은 전근대에 훨씬 더 많았다. 요즘도 이웃간 담장 구역이 어디까.. 2023. 9. 29.
평과 마지기...강렬한 빗금의 전통, ㎡의 탄생 식민지시대 문서를 보면 길이를 재는데 자주 보이는 단위가 尺(척)이다. 이것도 후기로 갈수록 미터법으로 대체한다. 미터법이 尺에 대해 지닌 최대 강점은 빗금의 경계를 최소화한다는 사실이다. 척으로 하면 척과 척 사이에 빗금이 생긴다. 이 점에서 미터법도 근간의 한계가 있지만 둘은 비교하면 그 빗금이 훨씬 줄어든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근대는 빗금의 퇴출이며, 그 자리에 라인을 갖다 놓는 것이다. 근대가 개막하면서 빗금이 급속도로 퇴출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통은 강고해 그것이 가장 널리 남은 곳으로 아파트 건축물 너비를 말할 때 쓰는 평이 있고, 농촌에서는 논밭 넓이를 말할 때 쓰는 마지기가 있다. 이 평은 얼마전부터 언론에서 나서 없애기 시작했다. ㎡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기는 내가 혹 둘을.. 2023. 9. 29.
산송과 측량, 경계 조선시대 후기, 살인사건의 상당수가 산송, 즉 조상들 묏자리 때문에 발생했다는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남의 선산에 자기 조상의 묘를 슬쩍 묻거나 여기가 네 땅이냐 내땅이냐를 두고 발생하는 분쟁들로 이런 싸움은 가문의 명예를 걸고 치고받기에 살인사건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런 산송이 비일비재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부정확한 측량과 경계의 설정이었다. 산송이 발생하면 아래 그림과 같은 산도형을 그려 제출하는데 그림을 딱 보면 싸움이 안 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그려놓았던 것이다. 모호함은 약자와 강자가 모두 선호할 때가 많다. 약자는 모호함 속을 파고 들 기회를 보게 되고 강자는 그 모호함을 기화로 약자를 강박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근대적 측량 기법이 도.. 2022. 12. 22.
빗금의 온상 양안量案, 근대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이동이며 토지조사업은 그 필연이다 이것이 조선시대 후기 토지대장인 양안量案이다. 그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경계의 확정과 이를 통한 삥뜯기인 세금 부과를 위함이었다. 소재지 지번 지형 등급 면적 소유주를 빠짐없이 기재해 빈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경계였다. 오만분지일 정도 되는 지도가 첨부되어야 하지만 지도가 없다. 지도가 없다 함은 경계가 빗금이란 뜻이다. 왜 이랬는가? 측량술이 없어서였다. 측량을 하지 못하니 그 경계는 언제나 빗금이었고 그 빗금 자리에서는 언제나 분쟁이 일어났다. 산송이니 뭐니 하는 망국병의 근원이었다. 근대는 저 빗금을 없애야 했다. 빗금은 선으로 바꿔야 했다. 토지조사사업, 그건 단군조선 이래 한국사의 혁명이었다. 저 빗금이 선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유류 토지가 발생했다. 남는 땅이었다. 이 .. 202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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