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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3

강화도 묘지사터 발굴현장에서 by 정학수(인천문화재단) 작년과 올해에 걸쳐 강도江都시기 묘지사 터로 전하는 곳을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강화도서 쫓겨나고서 잽싸게 국립서울문화재연고소로 개칭-편집자)가 발굴했고, 조사를 마치고 유적 설명회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이름으로 지난 주에 했다. 전 묘지사터는 마니산이 바라보이는 초피봉 남사면에 있다. 화도면 사기리 이건창 생가에서 멀지 않다. 1264년 고려 원종이 마니산 정상에 올라 참성단에서 초제를 행하기 전에 묘지사에 묵었다는 기록이 에 있는데,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터에는 온돌 구들과 고래, 부엌의 아궁이 등 난방/취사시설 유구가 담당 연구사의 설명에 따르면 대표 유적으로 봐도 손색 없을 정도로 아주 잘 남아 있었다. 고려후기 이전의 전면 온돌 유구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터는 마니산 정상을 정남향(정서향 아닌가 한.. 2023. 9. 4.
묘지사 터라 해서 팠더니 사찰 흔적은 어디에도 없는 강화도 아리숑숑 유적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고려왕조 강화도읍기(1232~1270) 묘지사妙智寺라는 이름의 불교 사찰이 있던 곳으로 알려진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산36-27 일원을 파고서 그 성과를 공개한 모양이라 고려사高麗史 증언에 의하면 묘지사는 1264년(원종 5년) 왕이 마니산 참성단에서 도교 의례 일종인 초제醮祭를 지내기 전에 거처한 사찰로, 마니산 동쪽 초피봉 남쪽 구릉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그렇게 알려졌지만 확실치 아니할 때 고고학계에서는 전傳이라는 수식어를 붙어기를 좋아해서 이곳 역시 전 묘지사지라 부른다. 묘지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으로 전傳하는 곳이라는 뜻이지 알고 보면 별게 없다. 네이버 지도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산36-27 map.naver.com 조사 직전 이곳은 구릉지대.. 2023. 8. 28.
광화문 앞 광장 월대 자리를 파제꼈더니... 4대문 안 발굴 양상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어 무엇보다 조선왕조가 건국하고 직후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문화층이 확인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니 이를 통해서 보면 경복궁을 포함한 주요 왕궁시설과 관련 도시시설 기반은 조선왕조 개창 이래 형성된 왕경 신도시라는 사실이 확실하다. 물론 그 이전, 예컨대 고려시대 흔적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나, 도시시설이라 할 만한 흔적은 여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해도 청자 쪼가리 몇 개를 건지는데 불과하다. 간단히 말해 현재까지 고고학이 드러낸 양상은 조선도읍 한양은 철저한 신도시라는 사실이다. 또 하나, 이 사대문 안은 홍수와 범람 피해가 극심해서 비만 왔다 하면 해발 고도 낮은 곳은 걸핏하면 물이 들이쳐 그 퇴적 양상이 조선건국을 기준으로 하면 그 역.. 2023.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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