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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경제3

여전히 강고한 농촌사회의 물물교환 전통 순전히 내 고향 기준이기는 하나 나는 거개 한국농촌사회가 같은 과정을 밟았다 보는데 개중 하나가 강고한 물물교환 전통이다. 내가 어린시절까지도 우리 고향에선 돈 구경하기 힘들었고 그 사용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모든 것은 물물교환에 따라 삶을 영위했으니 그러다가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한 시점은 거의 정확히 교육제도 변화와 일치한다. 엄마 아부지야 당연히 까막눈이시라 학교는 문전에도 못가봤고 큰누이는 아마 국민학교도 안나오거나 다니다 말았으며 죽은 형은 국민학교 겨우 나와 중학교인가 다니다가 도망쳤고 가운데 누이는 중학교, 막내누이는 고등학교, 남동생은 훗날 전문대학을 나왔지만 고등학교도 계우 마쳤다. 국민학교는 의무라 했지만 말뿐이었고 문제는 중학교 이후. 등록금을 화폐로 지불해야 했으니 이에서 돈이라는 게 .. 2023. 10. 9.
여행길이 폭로하는 조선의 이른바 선물경제 '선물경제'라는 말이 있다. 조선 후기, 17-18세기 경제가 화폐경제가 아니라 사대부들 사이의 선물 증여와 수수로 이루어진 선물경제더라, 이런 이야기인데 실제로 이 당시 조선시대 일기를 읽어보면 돈을 주고 필수품을 조달한 것보다는 집안마다 선물을 주고 받아 충족한 현상이 뚜렷이 보인다. 일종의 물물교환이라 하겠지만 선비들끼리인지 예의를 갖추어 물물교환한다. 그것이 선물경제이지 뭐 딴 것 없을 것 같다. 이 선물경제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것은 조선시대 여행길이다. 부북일기 같은 당시 여행 모습을 보여주는 희귀한 기록을 보면, 경상도에서 함경도까지 부방하러 가는 군관이 여행길에서 지급한 것은 돈이 아니다. 현물이다. 그리고 여로에는 상업적으로 발달한 숙소가 없다. 때로는 그 동네 사대부의 집에서 묵기도 하.. 2023. 10. 6.
동전 강제화 정책을 노래한 김우급의 시 동전을 사용하려고 먼저 시험 삼아 녹봉으로 나누어줌[用錢先試頒祿]김우급金友伋(1574~1643) 듣자니 조정에서는 동전 사용하려고백관에게 유달리 많이도 반사하다네지팡이 짚고 나가도 돈 한 푼이 없어나부끼는 주막 깃발도 자주 못보거늘 聞說朝廷用青銅, 百官頒賜也獨豐. 扶杖出門無一貫, 不堪頻望酒旗風. [해설] 동전을 유통 보급하기 위한 화폐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1633년(인조 11)에 조선통보朝鮮通寶를 법화法貨로 주조, 유통하기로 하였다. 이때 명나라의 만력통보萬曆通寶를 본떠 만들었는데 세종조에 주조, 유통하던 조선통보와 구별하기 위해서 팔분서八分書 조선통보로 주조하였다. 이 동전은 서울의 상평청常平廳에서 주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인 1634년에는 안동·대구·개성 등 물산物産이 풍부하고 인물.. 2019.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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