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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37

자가 미라화로 열반을 완성한 승려 In 2014, researchers made a remarkable discovery when they conducted a CT scan of a Buddha statue estimated to be around 1,000 years old. To their surprise, they found the well-preserved remains of a monk in a lotus position within the statue. 2014년 연구자들은 약 1,0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을 CT 스캔하면서 놀라운 발견을 했으니 놀랍게도, 불상 안에서 연꽃 자세를 취한 승려의 잘 보존된 유해를 발견한 것이다.이 불상은 11세기 또는 12세기에 만든 것으로 여겨지며 중국 명상 스쿨 Chinese Med.. 2025. 3. 7.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6): 에필로그 [2] 슈겐도 즉신성불 수행은 어떤 사람들이 했을까. 슈겐도 행자는 자연 속에서 수행하던 사람들-. 이들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전부 즉신불이 되기를 시도했던 것은 아니다.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슈겐도 행자 중 즉신성불 수행에 들어간 사람들은 행자들 중에서도 그 위세가 대단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행자들 중 버젓한 절에서라도 자리 잡아 있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거의 즉신성불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즉신성불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가진 것이 별로 없던 분들로 이들이 즉신성불의 고행을 택하여 스스로 즉신불이 되기를 선택하였다. 이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즉신불 성인들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인 에도시대에 살던 사람들임에도 행장이라고 할 만한 이 분들의 일대기가 자세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5): 에필로그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사건의 동기를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는 명분 하에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여러 가지 당시의 명분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슈겐도 즉신성불 고행을 한 행자들에 대해서도이들이 왜 이렇게 해야 했는지 그 배경을 찾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지만사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이들의 열정적인 종교적 신념이다. 산속을 헤메며 수련하고 죽기 전 상당기간을 곡기를 끊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옻을 달인 차로만 연명하던 그들이 뭐 그렇게 대단한 부귀영화와 명성을 노렸을까. 그들이 밝힌 대로 대자대비, 중생구제를 위해 내 한 몸 던지겠다는 종교적 신념 외에는 설명할 길이 많지 않다. 오늘날 이러한 즉신불에 대해 우리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4): 즉신성불의 종말 메이지 정부는 유신 이후 신불분리령을 통해이전에는 불교와 뒤섞여 있던 신도를 분리하여 별도의 종교시설화 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슈겐도는 여기서 신도의 일종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에는 슈겐도는 너무 불교 쪽으로 깊이 침투해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일단 슈겐도는 전통 신도의 이론적 배경이라 할 고사기 등 문헌에 전혀 나오지 않는 데다가 슈겐도 자체가 불교 천태종과 밀교진언종 등에 깊이 결합되어 신도로 분리해 내기 용이하지 않았던 점,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들자면, 슈겐도의 행자들이 즉신성불을 목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겠다. 메이지 정부는 유신 이후 가장 문제가 서구 제국과의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제국주의 국가들이 일본에서 치외법권 등을 요구하는 명분은일본의..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8): 문명개화와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개화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일본사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몰아닥친 급격한 근대화론을 의미한다. 이 사상에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일본 만엔짜리 지폐 주인공 후쿠자와 유키치다.  후쿠자와 집안은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하급무사로서사무라이 계급이라 해도 매우 한미한 집안에 속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후쿠자와 햐쿠스케(百助)라는 인물로 번의 회계를 보조하는 한미한 직역을 담당하는 하급번 관리였는데 (사실 이런 직역은 한국사에서는 아전이나 다름 없다)단순히 하급무사-번리였던 것만이 아니라 유학으로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다만 후쿠자와가 속한 번은 워낙 신분차별이 엄격하여 아무리 학문적 명망이 높아도 도통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렇게 일생을 전전하다..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7): 녹명관鹿鳴館시대 일본 메이지 시대에 지은 건물로 녹명관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어로는 로쿠메이칸이라 읽는다. 에도성에서 도쿠가와가 쫒겨 난 후 덴노가 쿄토에서 쇼군이 살던 성으로 옮겨 앉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일본 황거(皇居, 고쿄)이다. 일본은 개항이후 서구 제국들과 불평등조약을 맺고 있었는데 1880년대까지도 여전히 그러했다. 일본은 조선에 무력으로 개입한 청일전쟁 시기까지도 여전히 서양 세력과는 불평등조약이었고이 조약은 최종적으로 러일전쟁 이후가 되어서야 완전히 개정되어 사라졌다. 아무튼 1880년대에 일본은 불평등조약 개정을 위해 일본이 서양 못지 않은 문명국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덴노가 사는 동경의 궁성 옆에 외국 빈객을 접대하기 위한 서양식 건물을 짓는데이것이 바로 녹명관, 로쿠메이칸이다. 녹명관을 기점으.. 202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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