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한국인의 기원과 이동23 기마민족의 신화를 깨야 한반도 말의 역사가 보인다 앞에서도 한 번 썼지만 한국에는 한민족이 기마민족이라는 신화 아닌 신화가 있다. 명백히 에가미 나미오의 주장 기마민족일본정복설에서 기원한 듯한 주장으로사실 한민족을 기마민족으로 본 시각은 20세기 이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며20세기 들어서도 에가미 나미오 주장이 나온 후 돌연 한국인을 기마민족의 후예로 보는 시각이 유행하기 시작했지 그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이 블로그에도 썼던 것처럼 한국에서 말의 도입의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보면 매우 늦다. 일단 말의 사육 자체가 우리와는 지리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에서 시작된 데다가현재까지 확인된 말의 유존체도 중국보다 시기가 많이 늦다. 일본의 경우 서기 5세기까지도 말의 존재가 잘 확인되지 않는데 일본과 같은 계열의 도작문명의 상류에 해당하는 한국의 경우도 청동기시.. 2024. 9. 15. 한반도에서 왔지만 한국인은 아니다 야요이인이 외부에서 도래했다는 설이 처음 나왔을 때 이 설에 대해 부정하는 시각도 많았다. 야요이인과 조몬인은 머리뼈 형태가 분명히 다르지만 이건 식생활 등 환경적 영향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 후에 이것이 부정되면서 현대일본인은 외래계인 야요이인과 재래계인 조몬인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는소위 이중구조론이 정설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때 나온 새로운 주장이 외래계는 맞지만 그럼 어디서 왔느냐는 문제였다. 대부분은 한반도를 지목했지만일부는 벼농사와 함께 양자강을 지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주장도 최근에는 많이 불식되어 적어도 양자강을 지목하는 시각은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주류의 위치에서는 이미 탈락한 상태라고 본다. 최근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오냐 하면, 한반도는 맞지만 도래인이 한국인 그 자체는 .. 2024. 9. 14. 도작의 집중화가 일어난 곳: 한반도인가 일본열도인가 일본열도야요이시대에 도작은 한반도에서 넘어갔다. 이것은 부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문제는-. 일본열도 큐슈 북부에는 한반도에서 넘어간 것으로 보이는 도작 유적들이 나오는데야요이시대가 시작될 무렵의 촌락들은 도작에의 의존도가 아주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한반도의 도작은 잡곡과 함께 혼합농경의 형태로 한반도를 남하하였다. 그렇다면-. 도작이 다른 잡곡을 압도하여 도작에 의존도가 아주 높은 형태로 진화하는 현상은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났을까 아니면일본열도에서 일어났을까.도작에 아주 높은 정도로 의존하는 촌락은한반도 남부에서 생겨났을까 아니면일본열도에서 생겨났을까. 한반도에서 건너간 주민들은한반도 남부에서 이미 쌀농사를 주력으로 채택하였을까 아니면, 일본열도를 건너간 다음 쌀농사를 다른 잡곡보다 훨씬 많이 .. 2024. 9. 14. 야요이인 논의를 시작하며 오랫동안 준비해온 바, 야요이인 이동에 대한 논의를 이제 시작하고자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국문학술지에 야요이인 이야기를 쓰고는 아무 반응도 접하지 못하는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고,많이 읽는 일본어권 학술지에 글을 실어 일본에서 관련 논의의 중심에,태풍의 눈으로 직접 들어갈 생각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고대 한국인이 일본열도에 건너가 현대 일본인의 기원이 되었네 아니네나아가서는 일본의 덴노가 백제인의 후예이니 아니니 이런 이야기의 귀추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팩트만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이 설사 한반도에 불리한 이야기일지라도그것이 사실이라면 다 인정하고 밝힐 생각이니, 필자가 야요이인 이야기를 전개함에 있어 한국편만 들 것이란 생각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노라. 2024. 9. 14. 봉래각 이야기(5) 벼농사는 어떻게 바다를 건넜는가 한국땅에서 일본으로 도작 농경이 유입된 데 대해서는 그 시기는 논란이 있지만, 들어간 경로는 비교적 명확한 것으로 안다. 이에 반해 한반도의 도작에 대해서는 유입된 경로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혹자는 산동반도에서 요동반도로 들어와 서해안을 따라 남하했다고 하며 또 다른 설에서는 산동반도에서 한강유역으로 들어왔다고도 한다. 일부에서는 아예 양자강에서 바다를 건너 한반도 서남부로 들어왔다는 주장도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중 첫째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유는?우선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사이는 섬으로 연결되어 상호거리가 짧으면 십 몇 킬로미터, 멀어봐야 30-40킬로 정도로 맞은편 육지가 보이는 정도다. 두 번째 이유는, 현재까지 보고된 도작 관련 발굴 보고다. 이것이 현재까지 발굴 보고인데, 빨간색이 순수.. 2024. 6. 30. 봉래각 이야기(4) 요동으로 가는 마지막 섬 요즘은 세월이 좋아서 산동반도에서 요동반도로 이어진 장산열도 마지막 섬인北隍城岛라는 곳도 방에 앉아서 볼 수 있다. 여기서 요동반도까지는 불과 수십 리이며 산동반도에서 이 섬까지도 십킬로 미터 남짓한 거리로 섬이 계속 이어져 있다. 최초의 도작민은 이 장산열도를 따라 요동반도 남단으로 진입하여 여기에 도작 흔적을 남기고 동남방으로 남하하여 한반도 서북부로 진입했을 것이다. 뒤쪽 섬은 산동반도 쪽으로 이어지는 섬으로 생각된다. 북쪽 요동반도쪽으로는 더 이상 섬이 없기 때문이다. 봉래각에서 요동반도로 이어지는 장산열도 섬들은 천혜의 자연항이 있었다. 온라인의 사진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중국 쪽 소개에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관광지로도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이런 섬들이 이어져 요동반.. 2024. 6. 30. 이전 1 2 3 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