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인이랑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한 말이다.
그 30대가 내가 생각하기에 내 인생 절정이었다.
혹 나를 아시는 분들도 그리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땐 거칠 것도 없었고, 모든 것이 내 발 아래 있는 듯했다.
그때 나는 기자로서도, 또 연구자(?)로서도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달렸다.
필자로서 나는 2000년 풍납토성을 내고 이듬해 곧바로 화랑세기를 냈고,
기자로서는 이달의 기자상도 타고, 회사에서 주는 연말 보도대상도 두 번을 탔으며,
그 영향력이라는 것이 외부에서도 영향을 미쳐 거짓말 조금(많이) 보태면 내 말이 곧 법이었던 시절이었다.
그 순간 나는 두려워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김태식은 전연 그렇지 않았을 지도 모르며, 여전히 기고만장으로 비쳤겠지만, 실은 너무나 두려웠다.
이러다 나락으로 순식간으로 떨어진다?
이런 생각과는 거리는 멀었던 듯하며, 아무튼 그 비스무리한 감정이 엄습하기 시작했는데,
그 엄습이 시작하는 순간 나는 우선 집필을 접었고,
기자로서는 이른바 특종이 대표하는 그런 투쟁정신(?)을 상실해 버렸다.
저 두 단행본 후속타로 준비하면서 초교까지 끝낸 무령왕릉 출판을 미룬 것도 저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40대는 그렇게 벌어놓은 기고만장 시절 30대로 먹고 살았다.
월급쟁이로 치면 30대에 벌어놓은 것들을 까먹으며 살았다.
저 상태를 침체라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걸 빠져 나오는 데 15년이 걸렸다.
내가 다시 붓을 잡기까지 15년이 걸렸다.
그 15년도 내가 스스로한테 준 명령이 아니라 해직이라는 타율이었다.
이태 전쯤으로 기억하는데 30대는 어찌해야 하는지를 불같은 말로서 쏟아낸 적이 있는데,
혹자는 그런 이야기들을 두고 이상한 소리가 들렸으나, 듣고서 웃고 말았지만, 실은 나를 향한 고함이었다.
나한테 30대는 그렇게 이른바 내 인생 변곡점을 보면 정상에 선 시기지만 실은 나락으로 떨어진 시점이었다.
그렇다 해서 그리 간 길이 잘못이었다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침체와 등가인 말이 실은 침잠이니, 좋게 말해서 침참한 시기라 해도 좋으니깐 말이다.
다만, 내가 후회하는 한 가지는 글은 어떤 형식이건, 단행본이건 논문이건 계속 썼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걸 중단한 일이다.
난 아직까지 저 중단을 극복하지 못한 상황이다.
뭐 말이야 이것저것 쓴다지만, 그때의 동력 에너지는 상실해 버렸다.
그 동력은 영영 사라졌음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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