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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주자소에 삥땅쳤다는 동활자, 인사동 그거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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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 필원잡기筆苑雜記 제1권에는 조선 초기 활자 양상을 참말로 일목요연히 정리한 구절이 있으니 다음이 그것이다. 
 

태종이 일찍이 주자鑄字를 만들었는데, 모양이 썩 좋지는 못하였다.

경자년에 세종이 이천李蕆에게 명하여 중국의 좋은 글자 모양으로 고쳤는데, 이전 것에 비해서 더욱 정교하였으며 이를 경자자庚子字라 한다.

갑인년에 세종이 명하여 좋은 음양자陰陽字 모양으로 다시 주조하였는데, 극히 정교하였으며 이를 갑인자甲寅字라 한다.

경자자는 작고 갑인자는 컸는데 인쇄한 서책이 매우 아름답다.

세종 말년에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쓴 글자 모양과 강희안姜希顔이 쓴 글자 모양으로 다시 주조하였는데, 인쇄한 서책이 점차 예전만 못하여졌다.

지금에 동자銅字는 다 공장工匠들이 훔쳐갔기 때문에 목활자木活字를 겸하여 사용하므로 글자의 크고 작은 것과, 새 것과 헌 것이 같지 아니하며 글줄이 고르지 못하니, 옛날 인쇄한 책에 비하여 크게 뒤떨어진다.

 
이에서 이렇게 만든 동활자를 인쇄국에 일하던 기술자들이 다 훔쳐가 버려 빵꾸난 데가 많아서 목활자를 겸용하게 되었다는 증언인 바

도대체 이 구절이 정확히 어떤 의미가 무엇일까? 

동활자는 같은 글자라도 여러 개를 만들어 놔야 한다.

그래야 같은 쪽에 같은 글자가 나오더라도 각기 끼워 맞추어 책을 찍어내기 때문이다.

그런 동활자가 야금야금 실종되는 사태에 이르러 목판 인쇄도 곁들였다는 의미인 것만은 확실한데,

더 간단히 재고관리가 안 됐다는 건데

목판에다가 동활자를 찡구워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동활자에가 목활자 일부를 찡구어 넣을 수도 없으니 

이건 같은 책이라도 해도 예컨대 1쪽은 동활자로 찍고, 2쪽은 목활자로 찍고 했다는 뜻밖에 더 되겠는가?

이런 책이 물론 실물로도 있지 않았던가 내가 기억하는데, 이리 되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까?

나아가 동활자를 다 훔쳐갔다 하는데, 그 삥땅친 동활자는 어디다 썼을까?

녹여 쓰기에는 개별 활자는 규모가 작은데, 것도 뭉태기로 가져가면 사정은 달라질 수도 있겠다. 

빼내 가서 자기가 찍었을까?

그러기엔 이문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참 저에서 활자를 훔친 사람들로 그곳에서 일하던 하급 직원들을 사가정은 지목했지만 솔까 누군지 어찌 알겠는가?

참 그러고 보니 근자 인사동에서 떼거리로 발굴된 조선 전기 동활자들이 저리 삥땅쳤다는 그 활자 아닌가?

딱 그거 같은데?

누구야 도대체 삥땅 친 놈이?

저에서 말한 활자들을 정리하면 조선 왕조 들어 태종 때 처음 만들었다는 활자가 1403년, 태종 3년 주자소鑄字所에서 만든 동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말하며

그 단점을 극복하고자 1420년, 세종 2년에 새로 주자소鑄字所에서 만든 동활자가 경자자庚子字이며, 

그 다음으로 만든 동활자가 갑인자甲寅字라 해서 1434년, 세종 16년에 왕명으로 다시 주자소에서 만든 동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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