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생몰년도 모르는 너무나 우뚝한 셀렙 어숙권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2. 19.
반응형
영남문화뉴스 전재 고사촬요

 
조선 중기를 살다간 셀렙이지만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유명인사가 있다.

각종 증언이 풍부하게 남았고, 더구나 엄청시리 유명한 저술도 남겼으며, 이리저리 인구에 회자한 명성에 비추어 보아 도저히 이럴 수가 없다. 

어숙권魚叔權.

위선 성씨가 참말로 묘해서 희성이다.

거기다 서얼이라 하니, 더했겠다 싶기는 하다. 

이런 서얼이 기성에 침투해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가 외국어였으니,

하긴 뭐 구한말 이래 대한민국 시대 초중기에 이르기까지 영어 하나 잘하면 그걸로 날고 기었으니,

그 영어가 중국어인 시절, 어숙권은 이걸로 그런 대로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며 그런대로 떵떵거리며 살다갔다. 

그의 족적을 각종 인명사전에서 추려보면 1525년, 중종 20년에 그 유명한 권신 남곤南袞이 빽을 써서 설치한 이문학관吏文學官이라는 데 들어가 그 유명한 언어학자(라 하지만 실은 통역관이었다) 최세진崔世珍한테 배운 모양이다. 

이를 발판으로 1533년, 중종 28년 하절사夏節使라 해서 매년 여름마다 중국에 보내는 사신단을 수행해 쏼롸쏼라 통역관으로 따라 다녀왔으며,

1540년, 중종 35년에는 교서관校書館이라는 도서 교정 기관 감교관監校官으로 있었다니 보나마나 중국어 교재를 검열했을 것이다. 

김안국金安國 주청에 따라 설치된 찬집국纂集局이라는 역시 다른 출판국에 들어가서 이문吏文이며 속이문續吏文 같은 책을 편찬했다 하니

이 역시 결국은 영어회화교재에 버금하는 책이었으리 본다. 

1541년, 중종 36년 김안국 건의에 따라 외국어 능력자 특채 선발 시험인 한리과漢吏科과 설치되어 그 초대 합격자 명단에 오르지만 김안국이 죽자 흐지부지, 아까비, 암튼 이해에 또 하절사를 따라 다시 중국을 다녀온다.

그는 단순히 중국어에만 능통한 중국어 전문가가 아니었다.

이를 발판으로 문단에도 진출해 이런저런 족적을 남겼으니 현전하는 업적으로 고사촬요攷事撮要와 패관잡기稗官雜記가 비록 불완전하게나마 남아있다.

그에게서 율곡 이이도 잠깐 배운 적 있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율곡전서를 훑어봐야겠다. 

암튼 이 어숙권이라는 인물도 앞서 본 양사언과 더불어 죽고나서 심심하면 관짝에서 불려나온다. 

잠깐, 이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었는제 젠장, 본론은 다음편에서 시작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