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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니 설날이니 해서 고향을 찾는 이 귀성행렬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대의 발명품 아닌가 한다.
첫째 이 귀성전쟁은 이농離農을 전제로 하거니와 이농 탈농脫農은 근대산업화 도시화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둘째 교통수단의 변화다.
말 타고 혹은 도보로 다니던 시대에 무슨 귀성전쟁이 있겠는가?
도로도 없다시피 했을 뿐더러 며칠 걸릴지 장담도 못하는데 무슨 귀성이란 말인가?
전근대는 귀성도 없고 귀성 전쟁도 없고 귀성 체증도 없다.
이 귀성전쟁은 내가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우리한테 익숙한 이 풍경은 박정희 시대 중후반부 와서야 가능하다.
박정희 시대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사회 각 부분에서 획기를 이루는 시대다.
단군 개벽 이래 변동이 가장 큰 시대는 일통삼한도 몽골침략도 임란도 병란도 한국전쟁도 아닌 박정희 시대다.
나는 이를 한민족 2차 개벽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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