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권 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2년은 김유신이 만 60세가 된 해다. 595년 생이니, 당시 나이 관념으로는 61살이었던 때라, 그때 환갑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내가 확언은 못하겠지만, 없었을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둔다. 당시에는 생일 관념도 실상 없던 때라, 생일이라 해 봐야 부처님 생일인 초파일 정도만 기념하는 시대였다.
동아시아가 그랬다. 태어난 날이 특별하다 해서 매해 그날에 즈음해 조촐하건 떠들썩하건 생일잔치라 해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동아시아를 보면 당 현종에 와서야 비로소 확연히 보인다. 분류식 백과사전인 류서類書 중 일부를 보면 생일生日이라는 항목을 설정하고, 그런 생일 기념이 남북조시대 말기쯤에는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술하기는 하지만, 내 보기엔 영 믿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때가 김유신 환갑이었다고 운운한 졸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김영사, 2002) 관련 항목을 나는 삭제한다.
암튼 김유신 마누라와 관련한 논급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두 번이 보인다는 점이 무척이나 이채로운데, 신하가 장가가고, 그의 마누라 행적이 어떠니 저떠니 하는 기술이 두 번이나 등장하는 것은 파격 중의 파격이다. 본기本紀란 왕의 기억인 까닭이다.
암튼 저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2년 항목을 보면 이해 겨울 10월에 왕이 딸 지조智照를 대각찬大角飡 유신에게 하가下嫁케 했다고 적기하거니와, 그런 지조가 나중에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내는데 놀랄 노자라, 이로부터 물경 57년이나 지난 뒤에도 그 마누라가 여전히 살아있거니와
같은 신라본기 권 제8 성덕왕 11년(712)에 이르기를 "가을 8월에 김유신의 아내를 부인夫人으로 책봉하고 해마다 곡식 1천 섬을 주도록 했다"고 한 대목이 그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부인으로 책봉될 이때는 남편 김유신이 죽은지 이미 39년이나 지난 뒤였다는 사실이다. 595년에 태어난 김유신金庾信은 생평을 전쟁에서 보내며 찬바람을 맞았음에도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장수를 누리다가 673년 음력 7월 1일이 숨을 거두니 향년 79세였다.
이 날자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8월 18일이 된다 하는데, 이번달 19일이 김유신 제삿날이었다. 김해김씨 집안에서 제사를 지냈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시집간 시점으로부터 최소 57년, 남편이 죽어 돌싱 아닌 돌싱이 되어 생과부로 최소 39년을 산 마누라 지조는 대체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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