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소개한 보령 남포읍성은 다음지도 스카비뷰를 통해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그 구조적 특징과 더불어 입지조건이 완연하게 드러나는데 첫째 아주 정확한 정사각형은 아니지만, 실상 그나 다름없다는 점이요, 둘째 서해 바다에서 상륙한 지점 길목에 자리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읍성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포읍성藍浦邑城'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집필자는 조선시대 성곽 전공자로 현재는 충북대에서 정년퇴직 은퇴한 차용걸이며 이 글을 쓴 시점은 1995년이라 한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0호. 둘레 890m. 지정면적 11,478㎡. 현재 동·서·남문과 적대(敵臺)·수구(水口)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문종실록』에 의하면, 이 성은 1451년(문종 1) 둘레 2,476척, 높이 12척의 성벽에 높이 3척의 여장(女墻) 377개를 두었으며, 옹성(甕城)을 갖춘 성문이 세 곳이고 적대가 5개나 되는 규모로 축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읍성들은 주로 내륙의 요충지와 해안지대에 쌓았는데, 이 읍성도 조선 초기에 쌓은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에서 중요시된다.
성벽은 높이 4, 5m, 너비 3, 4m이며 평지에 정방형에 가깝게 터를 잡아 바깥면을 돌로 쌓았는데, 아랫부분은 비교적 커다란 깬돌로 쌓고 작은 쐐기돌로 틈을 메웠다. 석재는 성벽의 위로 오를수록 작아지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성문은 동·서·남쪽의 세 곳에 세워졌고, 모두가 옹성을 갖추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특히 동문터의 옹성은 비교적 완형에 가깝다. 5개의 적대 가운데 지금은 4개의 모서리에 치성(雉城)이 확인되고 있다. 동북·동남·남서·북서의 모서리에 둘레 25m 정도 바깥으로 돌출시킨 치(雉)는 조선 초기 읍성들 모두에 시설된 적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안에는 샘이 세 군데 있었고 성 밖에서 물을 끌어들여 저수하도록 시설되었으나, 지금은 수구(水口)가 하나 남아 있다. 서남쪽 모서리에서 서문터 쪽으로 치우쳐서 있는 가로 80㎝, 세로 60㎝의 네모꼴인 수구는 바닥과 천장을 판상장대석(板狀長大石)으로 깔고 덮은 것으로, 지금도 배수구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성안에는 동북쪽에 관아문과 진서루(鎭西樓)가 남아 있다.
16세기에 이르러서 이웃한 마량진(馬梁鎭)에 진성이 축조되면서 이 성은 이차적인 방어선 구실을 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국읍성조사(全國邑城調査)』(문화재관리국,1985)
「세종조하삼도연해읍성축조(世宗朝下三道沿海邑城築造)에 대(對)하여」(차용걸,『사학연구』27,한국사학회,1977)
범위를 좁혀 읍성과 주변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한데 내가 위성으로 이 읍성을 꼬나보다가 이상한 대목을 발견했으니 바로 남포중학교 북쪽 남포읍성이라 표시된 지점 건물 배치양상이다.
보다시피 근대기에 설립된 남포초등학교는 한국에서 전통적인 동서 장축에 남향인데 반해서 그 북쪽 남포읍성과 남포관아문이라 표시된 구역 건물 배치 양상을 보면 전연 뜻밖에도 완전한 서향이라는 사실이다.
세부로 보면 이렇다. A 남포읍성 바로 왼편 건물이 진서루鎭西樓인데, 이것도 그렇고 그 오른편 남포관아문도 남북으로 장축을 둔 서향西向이라는 점이다.
이런 건물 배치가 어느 시기에 읍성에서 나타났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 상식을 파괴하는 건물 배치라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덧붙여 동서남북 네 방향을 갖춘 저런 평면 사각형 구역에서 거의 예외없이 그 중심 되는 건축물군은 북쪽 정중앙 지점에 남쪽을 향해 위치한다. 왜인가? 그곳이 북극성이 상주하는 공간이요, 빛이 가장 많이 드는 공간인 까닭이다. 저곳에 오야붕인 현감이 있고 그 아랫것들인 일반 백성과 아전들은 그를 향해 도열하고는 배알한다.
한데 이 남포읍성에서는 동북쪽 귀퉁이 지점에 가 있다.
뭔가 사연이 있을 것이다. 내심으로는 혹 북쪽 성벽 안쪽 중앙지점에 뭔가 재수 없는 게 걸리지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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