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당쟁의 온상 재지사족

by 초야잠필 2024. 8. 23.
반응형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의 에도막부와 달리

조선에는 향촌에 특별한 직역 없이도

지주라는 경제적 기초, 

사족이라는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할 정도의 명예만 보장되면 

대대로 사대부로 존재할 수 있는 계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는데 

이들은 현실적으로 

중앙정부가 어떠한 세력에 의해 장악되는가 상관없이 

향촌을 지배하면서 대대로 내려갈 수 있었다. 

이들 재지사족이야말로

조선후기 당쟁이 격화되면서 (필자 주: 필자는 이 시기의 정쟁을 붕당정치라는 이름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나름 면밀히 검토하였는데, 

붕당정치라는 이름보다 당쟁이라는 이름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세력간 싸움이 당대에 그치지 않고 대대로 몇백년씩 이어질 수 있는 사실상의 기초가 되었다. 

얼핏 보면 

지방을 번이 지배한 막번체제가 우리 사회보다 통일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위로는 쇼군부터 아래는 농민에 이르기까지 열도의 모든 사람이 막번체제하에 편제되어 직역에 의해 녹을 받으며 먹고 살고 있었던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재지사족이 대대로 전해지는 토지를 지주로서 지배하며 중앙의 정권을 잡느냐 마느냐와는 상관없이 

그들만의 리그를 방해 받지 않고 지방에서 펼칠 수 있었으므로

이것이 바로 수백년간 지속된 당쟁의 사실상의 기초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일본이라면 이렇게 직역과 무관한 지주가 향신층으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지배계층 사이의 싸움이라면 전쟁으로 대판 붙어 

진 놈들의 일족은 다 잡아 죽이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처리되었으므로 당쟁처럼 수백년간 지역을 토대로 싸움이 진행될 수가 없었다 하겠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