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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는 소위 막번 체제로서,
사무라이의 경우
그가 막부의 직할 무사가 되건 (하타모토),
아니면 1만석 이상의 영주(다이묘)가 되건,
영주에 귀속된 번 소속 배신(번사)이 되건 간에
어떤 형태든 소속이 있어야 석고제에 따라 먹고 살 수가 있었다.
쉽게 말해 직역이 없는 사무라이는 없었다는 뜻이 되겠다.
소속이 없는 끈떨어진 사무라이가 결국 낭인이 되겠는데,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실업자가 되겠다.
이렇게 낭인이 한 번 되어 버리고 나면
다시 막번체제로 돌아가기 위해 공을 세울 기회만 노리고
정치적 혼란기에는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막번체제는 적극적으로 제거하고자 하였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출사하지 않아 직역을 받지 않고도 대대로 사대부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이들이 지방에 다수 존재하였다.
이들은 사마시까지만 보고 진사나 생원 타이틀을 획득한 후
벼슬하지 않고도 양반 신분을 유지 할 수 있었는데
일본으로 치자면 막번체제에 속하지 않고도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향촌의 지주로서
독립적 사무라이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셈이 되겠다.
이렇게 직역없이 중소지주로 존재하며
막신도 아니고 번사도 아닌 채 지배계급 신분을 계속 유지하는 계층은
일본의 경우에는 비슷한 예가 없다 할 수 있다.
막부이건 번이건 뭐라도 직역을 받아야 사무라이 신분이 유지되던 일본과
그런 것 없이도 과거제 하에서 사마시만 붙어도 중소지주인 한은 사대부 신분이 유지되던 조선-.
필자가 보기엔 이건 굉장히 큰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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