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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따로국밥을 하나국밥으로 만든 문화재, 그 위대한 탄생

by taeshik.kim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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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말이 하도 문제가 많고, 또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는 못하는 까닭에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다가 마침내 그 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재청 주도로 저걸 대체하는 새로운 대체어로 유산 heritage라는 말을 들고 나왔으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세계유산을 염두에 둔 것이라 

이 세계유산은 1971년 채택한 국제협약에 뿌리를 두었으니, 한데 이 협약이란 것도 약칭 World Heritage Convention 라 하지만 그 정식 명칭은 the 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이라, 계통이 다른 두 heritage를 임시 봉합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이 유산은 Cultural Heritage와 Natural Heritage를 수학적으로 결합한데 지나지 않는데, 통상 우리네 관념에서는 전자를 지칭하는 성향이 다대하지만, 문제는 문화재라는 말은 저 nature를 포괄할 수 없다는 데 근간의 문제가 있었다. 

이번 문화재의 유산으로서의 명칭 변경도 따지고 보면 저 후자의 문제였으니, 주로 자연유산 쪽 문제이기는 하지만, 저들은 걸핏하면 문화재를 협박하기도 했으니, 이럴 것 같으면 우리는 환경부로 가 버린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거니와, 그 협박이 무엇이건 실제 자연유산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양다리 걸치고선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앙코라는 앙코는 쪽쪽 빨아먹곤 했다. 

그렇다면 저 자연유산을 포괄하는 문화재라는 말은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가? 저 문화재라는 말이 전통시대에는 있을 수가 없으니 財는 고사하고 文化라는 말조차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없었던 까닭이라, 저 말은 culture 혹은 그에 해당하는 같은 종족 언어권을 근대 일본 혹은 중국이 수입하면서 어거지로 만들어 낸 말이라 

현재 우리가 문화재라고 할 적에 그 개념을 구성하는 실체들을 볼짝시면 그것이 인간의 활동 흔적인가 아닌가에 따라 그러한 문화유산과 그렇지 아니하는 자연유산으로 대별하며, 다시 문화유산은 그 형체의 여부에 따라 유형유산과 무형유산 두 가지로 세분한다. 

 

문화재는 저 돌덩이 섬 자체, 나아가 그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괭이갈매기까지 포섭하는 위대한 길을 열었다.

 
자연유산 또한 여러 기준으로 세분할 수 있으니, 그 생명력 존치 여부에 따라 생물자산과 비생물자산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기준 준거가 그 어떤 경우에도 철저해야 하지만, 우리네 문화재계 동네는 멍청한 놈들 집합소라 이 기준 준거 또한 지들 맘대로인 실정이다. 

그렇다면 자연유산까지 포함하는 말로 널리 쓰는 문화재라는 말은 어떤 시대 공간에서 어찌 탄생했는가?

현재 주어진 여건에 의하면 문화재라는 말은 1920년대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도 있었기는 한 듯한데, 이걸 어떤 시대 맥락에서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현재로서는 내 조사가 철저치 아니해서 그냥 1920년대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 정도로 퉁쳐 둔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 문화재가 무엇을 범주화한 말은 아니었다. 막연히 고물을 지칭하는 재화 개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듯한데, 그런 말이 어찌하다가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현재 우리가 아는 그 문화재 개념어로 완연히 정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 땅을 기준으로 우리가 문화재라고 할 때 그 원초는 1916년에 등장한다. 구로이타 가츠미가 관여하게 되면서 식민지 문화재 정책은 일변하는데, 고문서 전공자답게 이들 후대의 문화재 범주에 구로이타는 고문서를 집어넣는다. 이 일이야말로 한국문화재사에서는 진정한 혁명이라 간주할 만한데, 저에 대한 관심 혹은 의미 부여가 전연 없다. 

그럼에도 식민지시대 전반을 통털어 문화재라 뭉뚱거린 개념 자체가 없거나 희미해서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등등이 한 법률 아래서 따로 국밥으로 놀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식민 모국 일본의 관련 법률 변천사를 봐야 하는데, 아래 간추린 관련 법률이 그것을 명료히 말해준다.  
 
1871년 (明治4年) 古器旧物保存法
1897년 (明治30年) 古社寺保存法
1919년 (大正8年)史蹟名勝天然紀念物保存法
1929년 (昭和4年)国宝保存法
1933년(昭和8年) 重要美術品等ノ保存ニ間スル法律制定
1950년 (昭和25年)文化財保護法制定
1954년(昭和29年) 文化財保護法 第一次改正
1975년 (昭和50年)文化財保護法 第二次改正
1996년(平成8年) 文化財保護法 第三次改正
 
식민지 조선은 법률제정권이 없었다. 이것이 두고두고 문제가 되는데, 총독부는 그 법률제정권을 달라 했지만 번번이 내지 본국정부는 거부했다. 

법률제정권이 없는 총독부는 시행령으로 만족해야 했다. 훈령이니 뭐니 하는 하위 법률 말이다. 이것이 중요하기는 한데 문제는 테두리가 저런 본국 정부 법률을 벗어날 수 없다는 데서 근본 한계가 있었다. 

이 식민지 시행령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저를 보면 문화재라는 범주 혹은 개념은 1950년에 비로소 탄생함을 본다. 물론 저 시대 문화재라는 말이 등장하는 배경으로 그 이전, 문화재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았을 리가 없다. 식민지 조선만 해도 1920년대에 등장하는 그 말이 식민 모국에서 쓰이지 않았겠는가? 

그 이전 문화재는 따로국밥이었다. 그 법률 용어로 보면 古器와 旧物이 등장하다가, 古社寺가 다음 타깃이 되었으며, 그러다가 史蹟 名勝 天然紀念物이라는 범주가 나타났다. 그러다가 마침내 国宝라는 개념어가 확립하고, 그 다음으로 重要美術品이 보인다. 

1950년 문화재라는 말은 저런 선행 법률에 드러난 저와 같은 고물딱지들을 하나로 합친 말이다. 저 문화재보호법 등장이야말로 동아시아 문화재사에서는 대서특필해야 한다. 

문제는 이 문화재라는 말이 名勝과 天然紀念物을 포함했다는 데 있다. 이 점은 두고두고 문제가 된다. 

물론 모든 명승 모든 천연기념물이 자연유산인 것은 아니지만, 개중 상당수가 문화랑은 직접 관계가 없는 까닭이다. 물론 자연과 인간을 어찌 분리하겠느냐 하는 근간 문제는 차지할 때 말이다. 

이제는 유산遺産이라는 말에 자리를 내줄 문화재, 그 위대한 역사를 조곡弔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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