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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부여 고구려-.
삼한이라는 남쪽 사회와 비교해 보면
가축의 사육이 두드러진다.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영향권 안에 있던 야요이시대 일본
이곳까지 삼한과 같은 계열로 넣고 본다면,
남쪽으로 내려 올수록 가축의 사육이 미흡하여
서기원년까지도 일본의 경우
개 돼지 외에는 사육되는 가축의 종류가 뚜렷하지 않았다.
반면에 부여 고구려로 올라가면 각종 가축이 다양하고 풍부하게 사육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를 우리는
북방사회의 유목의 흔적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이건 유목의 흔적이 아니라 잡곡사회의 흔적이다.
중국도 황하유역 잡곡사회가 남방 양자강 유역보다 가축사육이 훨씬 흥성했다.
같은 현상이 요하 이동에서도 펼쳐진 것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도작이 강화되고
가축사육이 미흡한 현상은 중국에서도 그대로 전개된 모습이다.
부여와 고구려가 보이는 특징을 우리는 유목적 특징이라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잡곡사회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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