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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래 유목민이었다가 어영부영 농경문화에 들어온 그런 사람들도 아니다.
부여 고구려는 농경민,
그 중에서도 잡곡을 바탕한 잡곡농경민이다.
원래 잡곡농경민이 각종 가축사육이 많다.
황하유역도 용산문화 시기에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농경사회에서 사육하는 거의 대부분의 가축 사육이 완성되었다.
부여 고구려는 삼국지 동이전 보면 없는 가축이 없다.
이 사람들이 유목민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잡곡농경민이기 때문이다.
잡곡농경민은 원래 가축 사육을 끼고 살았다.
이 부여 고구려 유목민설에 기마민족론을 희안하게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 한국인의 조상이 원래 말타면서 유목했을거라는 건데
한국문화는 유목문화에 기원한 적도 없고 유목민이 주류였던 적도 없다.
잡곡농경이냐 도작농경이냐
그 차이만 있을 뿐.
중국에서 황하문명이냐 장강문명이냐
그 차이와 동일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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