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본적지까지 궁금해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전에 염전이야기를 쓰면서 얘기한 적이 있긴한데,)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당성 아래에 있는 동네가 아버지 고향이자 내 본적지다.
상안리는 경주이씨 집성촌으로, 당성 쌓으러 경주에서 온 신라사람들 후손이 아닐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어른이 되서는 거의 갈일이 없지만, 어릴때 할머니댁에 놀러왔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아련함 같은 것이 남아 있다.
오늘 화성시청에서 회의를 마치고나니 갑자기 당성에 오르고 싶어서 찾아갔다.
화성시가 2008년 무렵 설정한 도시 슬로건이 '길이 열리는 화성시(The Way to Better Living)'라고 하는데, 길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으나, 혹시 당성과 실크로드의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당성을 찾았던 것이 아마도 2017년 쯤이었던 것 같은데, 4년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입구에 넓은 주차장과 방문자센터가 생겼다.
오후 5시쯤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었는데, 작은 공간이지만 당성 안내 책자 제공, 휴게공간,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신흥사 방향으로 오르면, 발굴조사단과 정비공사를 위한 컨테이너 사무실이 있다.
이 앞에 당성 안내판이 있고 그 뒤에 있는 사적비가 오늘따라 눈에 띈다.
당성사적보존회라는 단체에서 2017년 보수공사 준공 기념으로 세운 것 같은데, 이름을 올린 사람들 모두 “홍씨”이다. 아마도 남양홍씨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도 기념식수 소나무와 기념비석이 있는데, 2013년 경상북도 실크로드 탐험대 방문기념으로 세웠다. 예전같으면 이렇게 요즘 만들어진 것들은 눈길도 안주고 올라갔을텐데, 이제 이런 것들도 시간이 쌓여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당성은 내부 건물지와 탐방로 등이 일부 정비되어 있었고, 현재도 정비가 진행중이었다.
당성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어떨까 잠시 고민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서쪽으로 지는 해를 보며 오늘 답사는 이만 마치기로 했다.
당성에 관한 설명은 아래 내용으로 대신한다.
(출처:문화재청 홈페이지)
계곡을 둘러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남북으로 길다란 네모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는 동문·남문·북문 터와 우물터,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성의 내벽은 흙으로 쌓고, 외벽은 돌로 쌓았다.
이 지역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의 영토로 당성군이라 하였으나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항성이라 하고, 바다를 건너 중국과 통하는 길목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성벽은 쌓은 벽이 무너져 마치 흙과 돌을 합쳐서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흙성의 성벽을 돌로 쌓아 올린 흔적이 남벽 쪽에 약간 남아있다.
당성이 소재하는 남양지역은 지금은 화성시이지만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으로서, 중국과의 교통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신라 후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해서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당항성과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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