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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쿠라라는 유명한 에도시대 이야기가 있다.
주군이 사소한 싸움으로 할복하자 졸지에 낭인이 되어버린 번사들이 와신상담
원수를 베어버리고 복수하는 것이다.
복수한 다음이 문제겠다.
유교윤리에서는 정당한 복수는 죄가 아니다.
이건 우리나라도 그랬다.
정당한 복수는 윤리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추신쿠라의 소위 46 의사 (혹은 47)에 대해서도
당시 사무라이들은 물론 에도의 죠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막부의 결정은 냉정하여 46명 전원을 할복시켰다.
이 46명의 의거는 장하지만 이걸 그대로 놔뒀다간 막부의 통치는 난장판이 될 것이므로.
에도시대에는 막말로 갈수록 신분이 높은 사무라이일수록 그래서 몸을 사렸다.
칼은 차고 다니고 화려하게 장식하지만
뽑지 않았다. 뽑는 순간 모가지가 날아가고
녹봉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에도막부가 무너지는 최후의 순간 소위 보신전쟁의 시기에
막부로부터 삼백년간 양육되던 소위 막부편 무사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눈치를 보다가 자멸한 이면에는
이런 당시의 기풍 탓도 크다 하겠다.
정작 당시 칼을 들고 설친 것은 그래서 잃을 것도 별로 없던
장남이 아니라 상속할 재산도 없던 하급무사의 아들들,
그리고 농민출신의 자칭 사무라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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