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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에도시대 학문사가 제대로 분석되어야 (난학 포함)
우리나라 실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견적이 나온다.
이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성리학의 황혼에 해당하는 다산이
졸지에 근대적 사상가가 되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다.
실학의 정확한 역사상 포지셔닝은
에도시대 학문분석이 끝난 후에 진행해도 늦지 않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조선후기 실학은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가장 빛났던 16세기 조선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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