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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극지와 고지의 얼음 미라

욱일승천의 기세와 일본의 해외 진출

by 신동훈 識 2025.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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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는 서역 유물이 본관 3층에 전시 중이다. 

이 유물의 기원은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의 승려 출신 탐험가,

오타니 고즈이(일본어: 大谷光瑞)가 실크로드를 탐사할 때 손에 넣은 유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던 것이 

해방 이후 우리 중박의 관리로 들어오게 된 것으로 안다. 

오타니 서역탐험에 대해선 아마도 김단장께서 따로 언젠가 다루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간략히 요약해 보자면 그의 서역 탐험은 

1902년, 1908년, 1910년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이 당시 투루판, 둔황, 누란 등 서역 각지를 탐사한 것이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어 필자가 글을 쓰고자 한 것은 이 내용은 아니며,

오타니 서역 탐사가 1910년을 전후한 시기 

욱일승천하는 일본의 당시 기세가 해외 진출에 힘을 받고 있던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와 유사한 탐사로는 1910년 일본의 남극 탐사대가 있다. 

아문젠과 스콧의 유명한 남극 탐사 경쟁이 1910-1912년 연간에 이루어졌는데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10년 당시 일본도 이 남극 탐사에 뛰어 들었었다. 

물론 아문젠 스콧처럼 남극점을 향해 달린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열강들이 남극 탐사에 뛰어든 것처럼 

일본 역시 개남호라는 탐사선을 보내어

남극 대륙에 상륙하고 현지 주둔하여 그 주둔지에는 "야마토 평원"이라는 이름도 붙인 모양이다. 

오타니의 서역 탐험은 그 하나만 떼어 놓고 봐서는 사회사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고

그 당시 일본의 욱일승천한 기세. 

이것을 염두에 놓고 봐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다고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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