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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도쿠가와씨의 방비는-.
하타모토였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쇼군과 주종관계가 맺어진 상대는
각지에 분봉된 번주(다이묘)들도 있지만,
1만석이 안 되는 자들은 번에 분봉하지 않고
하타모토旗本라 불러 쇼군의 직속으로 삼았다.
아무리 큰 번의 번사라도
쇼군의 입장에서 본다면 배신이므로 쇼군을 직접 대면할 수 없었지만,
하타모토는 아무리 석고가 낮아도
쇼군을 직접 배알할 수 있었다.
하타모토는 쇼군 집안의 가신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따라서 불과 몇천 석의 하타모토와
백만석의 거대 번의 번주는
대등한 관계로 서로를 "도노"라고 불러야했다.
하타모토는 유사시 동원령이 내려지면
그 종자들까지 합쳐서 병력이 대략 8만명 정도로 설계되어 있었다고 하므로
"하타모토 8만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예외도 물론 있었지만 거의가 에도에 몰려 살았기 때문에
에도의 인구가 백만 명에 육박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에도막부가 처음 세워지던 순간부터
막부가 위험에 처해지면,
막부 편에 선 번들과 함께
하타모토 8만이 막부편의 주력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그런 조건으로 도쿠가와 3백년 동안 녹을 받아 대대로 먹고 살았다.
이 하타모토가 바로 도쿠가와 집안이 최후의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한
두 번째 방어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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